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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원

金樂元

1898. 2. 29 ~ 1958.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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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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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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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3
  • · 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98년 2월 29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병곡면(柄谷面) 원황동(遠黃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김재동(金載東)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寧海面) 성내동(城內洞)의 장날을 기해 일어났던 만세 시위에 참여하여 병곡면 병곡동(柄谷洞)까지 이동하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영덕지역의 3·1운동은 3월 18일 영해 장터에서의 대규모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군 내 총 9개 면 가운데 영덕면·남정면(南亭面)·지품면(知品面)·영해면·병곡면·창수면(蒼水面)의 6개 면에서 일어났다. 특히 영덕 북부의 영해면·창수면·병곡면의 만세 시위는 경북에서 가장 격렬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영해 장터의 만세 시위는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의 예수교 북장로파 교회 조사(助事)였던 김세영(金世榮)이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서울에 머물던 중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을 목격하고는 고향으로 돌아와 만세 시위를 계획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김세영은 3월 12일 낙평동(洛坪洞) 교회의 구세군 참위로 있던 권태원(權泰源)을 만나 서울·평양·대구 등지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고 있음을 전달하였다. 권태원은 김세영의 권유에 따라 병곡면 송천동(松川洞)의 장로교회 조사인 정규하(丁奎河)를 만나 영해면·병곡면·축산면(丑山面)·창수면 등지의 기독교와 유림 세력 등을 규합해가며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18일 오후 1시경 영해 장터에 모인 2,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영해경찰관주재소, 영해공립보통학교, 영해공립심상소학교, 영해면사무소, 영해우편소 등을 습격하여 기물을 파손하였다. 오후 2시경 정규하는 2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북쪽에 위치한 병곡면의 주재소로 향하였다. 병곡면에 도착한 시위대는 400여 명으로 늘어났는데, 주재소를 습격하여 기둥과 지붕만 남기고 대부분 파괴하고, 면사무소의 납세고지서 원부 등의 공문서류를 파기한 뒤 오후 7시경에 해산하였다. 이 일로 일제에 붙잡혀 김세영 등 96명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어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 손괴, 기물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등의 혐의로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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