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흠
權重欽1876 ~ 1911. 12.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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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9) 1876년경 경상북도 영양군(英陽郡) 수비면(首比面) 광석리(廣石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권도촌(權道村)·권동촌(權東村)·권봉석(權鳳碩) 등의 다른 이름을 사용하였다. 1907년 음력 7월부터 1910년 6월까지 경북 봉화·순흥, 충북 영춘·충주, 강원 영월 등지에서 김상태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김상태는 1907년 7월 이강년(李康秊)을 제천의병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으로 추대하고 중군장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이강년이 순국한 뒤, 그 군사 지휘권을 인계받아 독자적으로 부대를 편성하고 1911년 6월까지 강원·경상·충청 등 소백산 일대에서 활동하였는데 이때 김상태 부대에 소속되었다. 당시 김상태 부대는 소위 일본군의 토벌을 피하면서 각처에서 유격전으로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1907년 음력 7월 김상태 휘하의 감관장(監官將)이 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음)8월 15일 밤 봉화군 춘양면(春陽面) 서벽리 이장(里長) 권경문(權敬文)을 고직령(古直嶺)에 있는 김춘실(金春實)의 집으로 납치하여 군자금 300냥을 제공하라고 하면서 광목(廣木) 1필과 현금 12원을 군자금으로 모집하였다. 그 후 순흥군 도강면(道講面) 도봉리(道峯里)의 김순집(金舜集)과 충청도에 거주하는 이모(李某) 두 사람이 함께 의병부대에 가입하여 그 대장 김팔달(金八達)을 살해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중, 1909년 7월 순흥군 용암면(龍巖面) 감곡리(甘谷里)의 주막에서 두 사람을 만나 동료 의병들과 이들을 끈으로 묶어 납치하여 고산리(高山里) 솔밭에서 처단하였다. 이와 같이 1907년부터 1909년까지 3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순흥·풍기·봉화 일원에서 활동하다가 순흥헌병분견대 서벽리분견소(西碧里分遣所)의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1911년 10월 23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11월 23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다시 상고하였으나 12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12월 25일 대구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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