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중협
權重協1877. 11. 27 ~ 1907. 8.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9)
관련 사건
- · 대한제국군
- · 군대해산 시가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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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9) 1877년 11월 27일 서울 북서(北署) 재동(齋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1896년 6월 25일에 무관학교(武官學校) 제1회로 입학하여 1898년 1월 17일 졸업증서를 받고, 19일 육군 참위(參尉)로 임명되었다. 이후 여단보병연대(旅團步兵聯隊), 육군 보병 부위(副尉) 등을 거쳐 1905년 3월 14일 헌병대 구대장(區隊長) 보직을 맡았다. 그러나 5월 4일 군부대신 이용익(李容翊)이 본래 보병과(步兵科) 학도(學徒) 출신이라는 것을 근거로 하여 보병 부위로 다시 임용하는 것을 건의하여 칙령에 따라 보병 부위로 임용된 뒤 육군무관학교 학도대에 배속되었다. 1906년에 군법회의 판사로 임명되었고, 1907년에는 시위보병(侍衛步兵) 제2연대 제1대대부 중대장의 직책을 받았다. 1907년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킨 일제는 같은 해 7월 24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의 부속 밀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일제는 대한제국군을 해산하기 위해 주한 일본군의 병력에 제12여단을 증파하고, 총기 6만 정을 보급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준비 과정을 마친 후 순종으로 하여금 7월 31일 「군대해산조칙(軍隊解散詔勅)」을 반포하게 하였다. 일제는 8월 1일 군대 해산의 내용을 모르던 일반 사병들을 도수연습(徒手練習)을 한다는 명분으로 훈련원에 집합시켜 강제로 해산하였다. 미리 군대 해산을 감지한 시위대(侍衛隊) 제1연대 제1대대는 무장 해제를 거부하였으며 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은 강제 해산에 항거해 자결하였다. 훈련원으로 향하던 제2연대에 박승환의 자결 소식이 전해지자 제2연대 제1대대는 남대문과 서소문 일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이게 되었다. 시위 보병 2연대 제1대대 중대장으로서 8월 1일의 전투를 수행하였으며, 중대장 오의선(吳儀善), 참위(參尉) 장세정(張世禎)·노덕세(盧德世)·이준영(李峻永)·이규병(李圭丙)·이한승(李漢承), 견습참위(見習參尉) 이긍주(李肯周)·이충순(李忠純)·백보용(白普鏞)·남상덕(南相悳), 특무정교(特務正校) 고희순(高喜淳) 등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서울 시위대의 해산에 이어 지방의 진위대(鎭衛隊)도 순차적으로 해산되면서 대한제국의 정규군은 사라지게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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