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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구

金相龜

1855. 6. 17 ~ 1908.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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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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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일(迎日)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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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산남의진(산남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본관은 월성(月城), 자는 성오(成五), 이명은 김상규(金相奎) 혹은 김고성(金高城)이라고도 하였다. 1855년 6월 17일 경상북도 영일군 신광면(神光面) 상읍(上邑, 현 포항시 북구 신광면 상읍리(上邑里)) 출신이다. 1905년 을사늑약의 강제 체결로 국권이 위태로워지자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때 고종의 시종관(侍從官) 정환직(鄭煥直)의 아들 정용기(鄭鏞基)는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정순기(鄭純基) 등 벗들과 의논하여 고향마을 경북 영천군(永川郡) 검단리(檢丹里)에 영천창의소(永川倡義所)를 차리고 통문과 격문을 배포하며 의병을 모집하였다. 창의소 본부의 이한구는 청송, 정순기는 영해(寧海), 이규필(李圭弼)은 흥해(興海) 등으로 나아가 각지 의사들을 불러 모았다. 이때 이규상(李圭相)·오수희(吳壽羲)·김찬묵(金餐默)과 함께 청하(淸河) 지방에서 의병 모집 책임을 맡아 활동하였다. 1906년 3월 경북 영천에서 정용기를 대장으로 하는 산남 의병부대가 결성되었다. 산남 의병부대는 서울진공작전을 위해 강원도 강릉(江陵)으로 북상한다는 목표로 여러 지대(支隊)로 나누어 1906년 (음)3월 5일부터 영천·청송(靑松)을 거치며 진군을 시작하였다. 이 무렵부터 본진 서기(書記)로 종군하면서 진중일기(陣中日記)를 전담하여 작성하였다. 그러나 1906년 (음)4월 28일 경주진위대(慶州鎭衛隊) 대장 참령(參領) 신석호(申錫鎬)의 간계에 속아 정용기가 대구 감영에 구속되었다. 부친 정환직의 주선으로 곧 풀려난 정용기는 1907년 4월 영일군 북동대산(北東大山)에서 다시 의병부대를 일으켰다. 이 무렵에는 그의 아들 김하회(金河回)도 종군하였다. 그러나 1907년 9월 대장 정용기를 비롯한 산남 의병부대 지도자들이 입암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에 정환직이 남은 병사들을 규합하여 의병을 다시 일으켰으나, 강원 강릉(江陵)으로 북상 중 일본군에 잡혀 1907년 12월 경북 영천에서 총살 사망하였다. 정용기·정환직 양대 대장을 잃자 새로운 각오로 동지 수십 명과 함께 기호지방으로 향하였다. 하지만 충청북도 단양(丹陽)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가 1908년 4월 7일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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