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욱
金尙旭1889. 12. 3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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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6) 1889년 12월 3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송장면(松長面) 영달동(永達洞)에서 출생하였다. 1916년 9월 7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절도죄로 징역 4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형기를 채우고 1917년 1월 7일 출옥하였다. 이후 만주로 이주하여 1923년 5월 10일 대한통의부(통의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통의부는 1922년 8월 23일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서로군정서·대한광복군영·대한정의군영 등의 독립군 단체가 개최한 남만한족통일회의에서 통합 독립군단으로 결성되었다. 이것은 1920년 10월 일본군의 대대적인 간도 독립군 토벌 이후 강화된 일본군에 대해 효과적인 항일전을 전개하려고 벌인 독립군단 통합 운동의 결과였다. 남만주 지역의 통합군단으로 성립한 통의부는 김동삼(金東三)을 총장으로 하는 중앙조직과 한인 마을을 자치 대상으로 하는 지방조직을 조직하고 항일무장투쟁을 벌일 군사조직으로 의용군을 편성하였다. 통의부는 참여 각 단체의 독립군을 통합 재편하여 김창환(金昌煥)을 사령관으로 1개 대대 산하에 5개 중대의 의용군과 독립 중대인 유격대 및 헌병대의 7개 중대로 편제하고 1개 중대는 3개 소대로 편성하였다. 의용군은 그동안 일제의 주구가 되어 독립운동을 방해해 온 친일 밀정을 처단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수시로 국내에 진입하여 일제 기관의 파괴, 일본관헌의 처단,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하였다. 1924년 8월 15일 동지 4명과 함께 군자금 모금을 위해 권총과 장총으로 무장하고 압록강을 건너 초산군 서태면(西泰面) 신도장(新島場) 부근을 통해 국내로 몰래 들어왔다. 8월 30일 오후 9시경 의주군 송장면 영달동 김재준(金載俊) 집에 들어가 그곳에 기숙하던 정마리아에게 200원을 받아가지고 나오다가 의주경찰서 경찰 3명과 교전하였다. 9월 22일까지 초산군 내를 비롯하여 벽동·창성·삭주 각 군을 돌아다니며 700여 원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32년 6월 13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및 강도죄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 1937년 6월 13일 만기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적을 기려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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