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옥
金尙沃1901. 11. 2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청년단연합회
포상 정보
- · 독립장(196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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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8) 1901년 11월 20일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창신동(昌信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상옥(尙玉)·상옥(相沃)이다. 1919년 3월 1일 고향 선천 읍내에서 일어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혀 7월 17일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만주로 망명하여 1920년 콴뎬현(寬甸縣)에서 대한청년단연합회(大韓靑年團聯合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청년단연합회는 1919년 11월 안병찬(安秉贊)·김승만(金承萬) 등이 주도하여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본부를 콴뎬현 향로구(香爐溝)에 두고 중앙조직과 지방조직으로 나뉘어 만주와 국내에 있는 80개의 청년단체가 참여하였다. 특히 국내는 강계청년단(江界靑年團)·위원청년단(渭原靑年團)·벽동청년단(碧潼靑年團) 등이 소속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후원, 일제와 민족반역자 처단, 임시정부 교통기관 지원, 만주와 국내 독립운동 단체의 연계 강화를 위해 활동하였다. 대한청년단연합회에서 주로 국내 의주(義州)와 선천 등지에서 선전 활동을 담당하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포고문(布告文)」과 「경고문(警告文)」, 『독립신문(獨立新聞)』을 배포하는 한편,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다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21년 8월 2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8년 형을 선고받고 옥살이하였다. 복역 중 고문으로 등골뼈에 골절상을 입었다. 1928년 출옥한 뒤 중국 광둥(廣東)으로 다시 건너갔으며, 1929년 흥사단(興士團)에 가입하였고 대한민족전위(大韓民族前衛)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30년에는 푸젠성(福建省) 첸저우(泉州)에서 중국학생구국연맹(中國學生救國聯盟) 결성에 참여하여 중국 청년들과 함께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37년 국내 공작의 사명을 띠고 타이완(臺灣)·일본(日本)을 경유하여 부산에 도착한 뒤 선천으로 잠입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수개월간 취조를 받았으나 뚜렷한 활동 내용이 없으므로 거주제한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1939년 일본군이 푸젠성을 점령하자 이 기회를 이용하여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으며 광복까지 푸젠성 샤먼(廈門)에 머물렀다. 사망 연도는 알 수 없으나, 다른 자료에 따르면 광복 이후 교포들의 귀환 편의를 위해 노력하다 귀국하였으며, 1969년 10월 2일 사망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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