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훈
金鳳薰1885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신민부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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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85년생으로 추정되며, 본적은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장동면(長洞面) 관동리(館洞里)이다. 독립운동 당시에는 지린성(吉林省) 중동선(中東線) 석두하자(石頭河子)에 거주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망명하여 남만주의 독립단(獨立團)에 가담하였으며, 군자금 모금을 위해 희천특파원(熙川特派員)으로 국내에 파견되었다. 1921년 4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4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1927년 3월 다시 만주로 건너가 신민부(新民府)에 가담하였다. 신민부는 1925년 3월 10일 닝안현(寧安縣)에서 북만주 지역 최대의 독립운동 단체로 결성되었으며, 대한독립군단(大韓獨立軍團)과 대한독립군정서(大韓獨立軍政署)의 김혁(金赫)·김좌진(金佐鎭)·최호(崔灝)·조성환(曹成煥)·정신(鄭信) 등이 주도 인물이었다. 발족 직후 군사부위원장 김좌진의 지휘하에 보안대와 별동대를 두고 항일 무장투쟁의 전개에 주력하였으며, 지방마다 총판(總辦)을 두어 교민을 위한 자치행정에도 힘을 기울였다. 1928년 1월경에는 신민부 재정부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음력 정초(正初)를 기해 석두하자의 한인 마을에서 개최된 신민부 총회에 참석하던 중 12명의 하얼빈 주재 일본영사관 경찰대와 32명의 중국 경찰로 구성된 합동 수색대의 습격을 받고 교전 중 붙잡혔다. 당시 총 15명의 신민부 간부가 붙잡혔으며, 이들 중 신민부 중앙집행위원장 김혁, 경리부 및 민정부 심판부장 유정근(俞政根), 문화부장 이원학(李元學), 별동대장 윤영순(尹永順), 경무부장 남중희(南重熙), 민사부장 김윤희(金允熙), 지방조직위원장 박광원(朴光遠) 등 9명과 함께 재판에 회부되었다. 별동대원 황처준(黃處俊)은 6개월에 걸친 예심(豫審) 중에 옥중 순국하였다. 이때 일제 경찰은 고려촌(高麗村)이라고 불리던 한인 마을 전체와 한인들이 운영하던 고려소학교를 포위·수색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권총 탄환 80여 발과 태극기, 상하이(上海)와 광둥(廣東)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와 연락한 문서, 미국 하와이의 독립운동 단체가 발행한 신문과 러시아 문서 등을 압수하였다. 신민부 총회 장소가 일제 경찰에게 탐지된 것은 1927년 여름 국내에 잠입하여 활동하던 대원들이 검거되고 내부 비밀의 일부가 드러나면서였다. 1928년 3월 12일 신의주경찰서로 이송되어 취조를 받았으며, 4월 4일 동(同) 검사국(檢事局)에 회부되어 신의주지방법원의 예심을 거쳐 1929년 6월 21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6년 형을 선고받았다.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여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은 뒤 1933년 12월 만기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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