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인
金福寅미상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선천경찰서 투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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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평안북도 선천군(宣川郡) 출신으로 생몰연대는 미상이다. 이명은 복관(福寬)이다. 일찍이 기독교사상을 받아들였고, 선천의 신성학교(信聖學校)를 졸업하였다. 1920년 8월 24일 만주 콴뎬현(寬甸縣)의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결사대가 국내로 파견될 때 작전에 참여하였다. 이 작전은 미국의원단 일행의 한국 방문을 계기로 국내에 있는 일제의 주요 기관을 폭파하거나, 일제 요인을 암살함으로써 한국 민족의 독립 의지를 알리려고 계획되었다. 국내로 파견된 결사대는 모두 3개의 부대로 편성되었다. 제1대는 서울, 제2대는 평양, 제3대는 선천과 신의주 방면으로 파견되었다. 선천에 파견된 결사대원들은 선천YMCA 총무를 맡고 있던 박세건(朴世健)과 접촉하였다. 박세건을 소개로 결사대원을 만나 거사 계획을 듣고, 적극적으로 찬동하여 신성학교 재학생 박치의(朴致毅)를 소개해주었다. 이후 제3대 대원들과 함께 선천에 소재한 주요 관공서에 대한 폭파 계획에 착수하였다. 미국의원단의 선천 통과가 예정되었던 8월 24일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국경 경비의 강화로 인해서 작전에 사용할 무기의 반입이 늦어지는 바람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었다. 이에 제3대 대원들과 함께 작전을 변경하여 1920년 9월 1일 선천군청의 지적창고(地籍倉庫)에 폭탄을 던졌다. 그러나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같은 날 새벽 3시에 또 다른 대원들은 선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고 최급경고문(最急警告文) 등 수종의 유인물 수십 매를 살포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일로 제3대 대원들과 함께 일본 경찰의 추적을 받게 되었고, 20여 명의 동지와 함께 9월 7일까지 전원 붙잡혔다. 1920년 12월 20일 평양지방법원 선천지청에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1921년 4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1924년 1월 13일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겪고 만기 출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성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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