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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식

金萬植

1866. 10. 4 ~ 1933.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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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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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安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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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9) 1866년 10월 4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천전1리(川前1里)에서 김효락(金孝洛)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조부는 도사(都事)를 지낸 김진린(金鎭麟)으로 명문가의 후손이다. 본관은 의성(義城)이고, 자는 형일(亨一), 호는 근암(槿庵)이다. 유인식(柳寅植)·김동삼(金東三) 등 안동의 유림과 힘을 합해 1907년 천전리에 민족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설립하였다. 이 학교는 전통유림의 지방색을 가진 안동에 설립된 최초의 신식 교육기관이었다. 1909년 (음)3월에는 이상룡(李相龍)과 협력해 대한협회(大韓協會) 안동지회를 설립하였다. 전통을 존중한 유림이었지만 서구열강과 일제 침략을 일찍부터 자각하고 민족의 자강(自强)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를 맞자 이러한 노력도 큰 결실을 맺기가 어려워졌다. 이에 백부 김대락(金大洛)과 이상룡 등이 서울의 신민회(新民會)와 연결하여 계획하던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동참하였다. 40대 중반에 가까운 나이였지만 체력을 생각하지 않고 선발대가 되어 서간도를 왕래하며 기지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다. 마침내 1912년 김대락과 함께 가족을 인솔해 서간도로 망명하였다. 망명지인 서간도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는 신민회 회원인 이회영(李會榮)과 이동녕(李東寧), 안동의 대표적 혁신 유림인 이상룡과 김동삼 등이 앞장서 독립군 기지를 개척해나갔다. 이들과 힘을 합해 한인 자치단체인 경학사(耕學社)를 조직하고,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를 비록한 민족학교 설립에 온 정성을 쏟았다. 이들 망명 민족운동가들에 의해 류허·퉁화(通化)·화뎬현(樺甸縣) 등 서간도 지역은 착실히 독립군 기지로 개척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기지를 기반으로 독립군단(獨立軍團)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성립시켰다. 이상룡이 독판(督辦)에 선임되어 항일 무장 활동을 이끈 서로군정서는 북간도의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 군대임을 자임한 독립군단이었다. 이 서로군정서가 성립될 때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미 50세를 한참 넘긴 나이였기에 조직원이 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국내를 왕래하며 군자금을 확보해 서로군정서를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서로군정서는 이후 일제의 만주 침략과 독립군 탄압 등 여러 요건이 발생하면서 다른 군단과 통합과 해체를 반복하였다. 상황이 그같이 변해갔지만 여전히 국내를 왕래하며 자금을 확보해 독립군 지원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1928년 의주군(義州郡) 청성진(淸城鎭)에서 일제 경찰대에 붙잡혔다. 60세를 넘긴 노인이었기에 투옥되는 것은 면했지만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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