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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구

金炳九

1886. 1. 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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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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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영원(寧遠)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영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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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북로군정서
  • · 대한독립무정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886년 1월 5일 평안남도 영원군(寧遠郡) 온화면(溫和面) 용덕리(龍德里)에서 태어났다. 김홍식(金弘植) 또는 김주린(金周麟)이란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러시아령 연해주와 중국 만주, 그리고 상하이(上海)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등 활동 반경이 매우 광범위하였다. 특히 상하이에 있는 독립신문사 지방특파원으로 활약하고, 중국 지린성(吉林省) 허룽현(和龍縣)과 옌지현(延吉縣) 등지에서 대한독립무정단(大韓獨立武政團)의 일원이 되어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4월 중국 지린성 옌지현에서 북로군정서에 가입하여 서창무(徐昌務)·박창환(朴昌煥)·반용환(潘龍煥) 등과 함께 군자금 모금 활동에 종사하였다. 이후 독립신문사의 사원이자 대한독립무정단의 일원으로 중국 옌지현과 허룽현 일대에서 『독립신문』과 경고문을 휴대하고 신문 배포와 군자금 모금을 수행하였다. 『독립신문』은 1919년 8월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창간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의 역할을 하였다. 사장 겸 주필에 이광수(李光洙), 편집국장에 주요한(朱曜翰)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1924년 1월 10일 밤 화룡면 명신사(明新社) 황도동(黃道洞) 백호장(百戶長)인 엄진섭(嚴振燮)을 시켜 부락민을 집합시킨 뒤 『독립신문』과 경고문을 보이고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후에도 서창무·박창환·반용환·김덕윤(金德潤) 등과 함께 허룽현 황직동(黃稷洞) 백호장을 찾아가 군자금 명목으로 240원을 모금하는 등 허룽현 일대에서 다수의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4년 2월경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눈치 챈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이후 일본 경찰에 의해 모진 고초를 겪다가 1924년 9월 29일 청진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및 강도 혐의로 징역 1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25년 1월 21일 열린 경성복심법원 재판에서 서창무·반용환·박창환 등과 함께 12년 형이 확정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이후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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