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백손
金百孫1893. 8. 22 ~ 1965. 9.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건국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 · 대한건국단의 군자금 모금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3년 8월 22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임천면(林川面) 만사리(晩士里)에서 태어났다. 김백순(金伯順)으로도 불렸으며, 염료행상(染料行商)을 하였다. 1919년 3월 6일 충남 부여군 임천면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고, 1920년 11월경 대한건국단에 가입한 뒤에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부여 지역은 비밀결사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의 활동무대였으며,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천도교 조직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6일 임천면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에 참가하였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다른 독립운동 단체 및 독립군 조직과의 합병을 꾀하였고, 1919년 12월 1일 국무원령 제205호에 따라 대한군정부(大韓軍政府)를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로 변경할 것을 규정하였다. 1920년 2월부터 공식적으로 대한군정서라는 명칭으로 변경된 대한군정부는 서간도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와 구별하기 위하여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라고도 불렸다. 1919년 김영진(金瑛鎭)과 충남 청양군(靑陽郡) 출신인 조병채(趙炳彩) 등이 군자금 모금을 위해 충남 논산군(論山郡) 광석면(光石面) 정동리(井洞里)에서 비밀결사인 대한건국단(大韓建國團)을 조직하였다. 부여군 규암면(窺岩面) 합송리(合松里)에 거주하면서 1920년 11월경부터 대한건국단에 합류하였다. 부여군 출신으로 동향이었던 이창호(李昌鎬)·노재철(盧載喆)·김덕제(金悳濟)·김형제(金亨濟) 등과 함께 부여군 석성면(石城面) 현내리(縣內里)·탑동리(塔洞里)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1921년 3월경 경기도경찰부 소속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3월 29일 검사국으로 인계되었다. 수사 과정에서 180여 일간 미결 구류 상태로 감금되었다. 1922년 4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1922년 9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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