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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선

金文善

1900 ~ 1936.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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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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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회양(淮陽)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회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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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군비단
  • · 대한독립광복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900년(추정)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난곡면(蘭谷面) 유읍리(楡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경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팔도구(八道溝)로 건너갔다. 동년 8월 창바이현(長白縣)에서 대한독립광복단(大韓獨立光復團)에 가입하여 참모총장 김성극(金星極)의 전령(傳令)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음)7월 초순, 평안북도 영변(寧邊) 출신의 대한독립군비단원(大韓獨立軍備團員) 유영규(劉泳奎)와 함께 함경남도 지방으로 입국하였다. 이후 유영규가 만주로 이주하기 전에 관여했던 대한독립자유회(大韓獨立自由會) 조직이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그 회원 7명이 붙잡혀간 곳인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 잠도면(蠶道面)으로 잠입하였다. 그리고 독립운동가 박병양(朴丙陽)과 접선하며 조직 재건을 꾀하였다. 유숙 중이던 여인숙 주인 유응찬(劉應贊)의 귀띔으로 원동리(院洞里)의 이정수(李廷洙)를 불러 독립 운동 방해 행동을 꾸짖고 충고하였다. 그러나 그로 인해 경찰에 붙잡혀서 만주에서의 행적에 대해 엄혹한 취조를 받고 평양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수사 결과, 동년 (음)2월 하순경 함남 갑산군(甲山郡)의 박종남(朴宗南) 등과 모의하여 갑산군 내 방모(方某)에게서 군자금을 강취하였다는 혐의가 붙어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공갈미수, 강도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평양지방법원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불복 항소하였다. 1922년 1월 3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원심 기소 사실 중의 군자금 강취 혐의가 1921년 (음)10월 7일경 함남 삼수군(三水郡) 별동면(別東面) 장수리(長壽里)의 방익호(方益浩)를 찾아가 권총으로 위협하며 군자금 20원을 강탈했다는 내용으로 변경됨에 의해서였다. 이에 고등법원에 상고했으나 동년 3월 18일 기각되었다. 다시 방호익 협박 혐의의 행위 시점 성립 불능을 근거로 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그것 또한 ‘2월 7일’의 오기일 뿐이라며 9월 28일에 기각되었다. 서울 마포(麻浦)의 경성감옥에서 원심 형량 대로 옥고를 겪었다. 출옥 후 남만주로 건너가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 들어갔고, 콴뎬현(寬甸縣) 하루하촌(下漏河村)에 근거지를 둔 제1사(師) 제3대대 제3중대 제3소대 대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1936년 10월 8일 제1사 사령 최종륜(崔宗崙)의 명령을 받고 무기 노획을 목적으로 소대장 김병하(金炳河)의 인솔하에 대원 신종삼(申鍾三)·계만수(桂萬秀)·정운준(鄭雲俊)과 함께 압록강을 건너 국내로 침투하였다. 이튿날 9일 오전 8시경 평북 벽동(碧潼)경찰서 노장(魯章)출장소를 기습하여, 정문 보초 신무라辰村嘉一 등 일본 경찰 3명을 사살하고 안으로 진입하였다. 그러나 경찰대와의 총격전 끝에 정운준을 제외한 3인 대원과 함께 피격당하여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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