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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석두

孔石斗

미상 ~ 1909.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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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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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이근수 의진(이근수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3) 출생 연도, 출신지, 성장 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황해도 평산(平山) 출신의 이근수(李根守) 의병부대의 중대장으로 연안(延安)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근수는 유인석(柳麟錫)의 제자이자 같은 평산 출신 의병장이었던 이진룡(李鎭龍) 의병부대와 유기적 관계 속에서 활동하였다. 대규모의 전투보다는 소규모의 게릴라전에 능하여 평산·해주(海州) 일대에서 일본군과 30여 차례 접전을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의 강력한 항일 투쟁으로 말미암아 일본 군경의 진압 작전이 심화되었다. 연안 도서로 근거지를 이동하게 되었다. 황해도 경찰부장 경시 진군길(陣軍吉)이 내부 경무국장 송정무(松井茂)에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일제는 이미 이근수·지홍일(池洪一) 연합 부대가 연평도(延平島)에 상륙한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하고 있었다. 100여 명의 연합 부대가 연안군 미산면(米山面) 및 증산도(甑山島)에서 해로를 통해 강화(江華) 교동(喬洞) 방면으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이러한 정보를 미리 탐지한 일제는 황주(黃州)·평산·연안·해주의 네 수비대를 연평도에 파견하여 미리 공격할 준비를 하였다. 일제는 수비구(守備區) 대대장(大隊長) 기토(木藤) 소좌(少佐)에게 지휘를 일임한 뒤 해주수비대에 진압을 명령하였다. 1909년 1월 19일 정오 무렵 이근수·지홍일이 이끄는 연합 의병부대는 어선 두 척에 나누어 타고서 주의를 기울이며 연평도에 상륙하였다. 하지만 잠복 중이던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피아간 격렬한 전투가 다섯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당시 의병들의 전투력과 저항 의지가 매우 뛰어나 그 기세가 쉽게 꺾이지 않았다. 이들은 연평도의 지형을 이용하여 악전고투하며 다섯 시간의 전투를 버텼다. 하지만 결국 총대장 이근수를 비롯하여 분대장 최흥대·서여선·원광덕 등 46명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체포된 의병의 말에 따르면 지홍일은 부하들과 함께 교동 방면으로 이동하였고, 연평도에 상륙한 65명은 모두 이근수의 지휘를 받는 의병으로서 연안군 증산도로부터 건너왔다고 한다. 일제는 면(面)·동장(洞長)을 불러 전사한 의병들의 시신을 매장하라고 지시한 후에 철수하였다. 가매장되어 있던 이근수 의병부대 30여 명의 시신을 1909년 2월 8일 친족들이 인수한 것으로 전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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