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金東純189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독립군정서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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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함경북도 청진부(淸津府) 포항동(浦項洞)에서 태어났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1923년 당시 30세였다고 하므로 1894년생으로 추정된다.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에서 활동하던 강철구(姜鐵求)를 도와 국내에서의 군자금 모집 활동에 참가하였다. 강철구는 1920년 1월 북간도(北間島)에 있던 북로군정서에 가입하여 총재 서일(徐一)의 비서로서 활동했으며, 충청남도 부여(夫餘) 출신으로 서울 지역을 관할하던 대종교(大倧敎) 남도본사(南道本司)의 지도자 강우(姜虞)의 둘째 아들이기도 하였다. 북로군정서는 북간도에서 서일(徐一)·계화(桂和)·김좌진(金佐鎭) 등 대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항일 무장투쟁 단체로, 1911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왕칭현(汪淸縣)에서 결성된 중광단(重光團)이 3·1운동 이후 정의단(正義團)으로 확대·개편되는 과정에서 결성된 항일독립군 부대였다. 이후 북로군정서는 1920년 2월 왕칭현 시따풔(西大坡)에 사관연성소(士官練成所)를 설치하여 독립군 간부를 양성하는 한편, 러시아 등지에서의 무기 구입 등을 통해 전투 역량을 강화하였으며, 청산리 대첩을 승리로 이끄는 주역이 되었다. 친구인 강철구가 1920년부터 1922년 7월까지 2차례에 걸쳐 국내로 들어와 대종교 본부와 부여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자 청진에 거주하며 강철구의 활동을 도왔다. 특히 경계가 삼엄한 국경 지역에서 자유로운 활동이 어려운 강철구를 대신해 그가 만주에서 가져온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공채(獨立公債)와 군자금 영수용지(領受用紙) 및 선포문 등을 보관해주었다. 한편, 국내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간도로 귀환해 천영학교(天英學校) 교사로 활동하던 강철구가 1922년 12월 경 동대문경찰서의 조회로 간도경찰서에 붙잡혀 국내로 압송되자 문장섭(文章燮)·문경섭(文瓊燮)·김동진(金東鎭)·박길화(朴吉和)·김정제(金廷濟) 등 다른 관련자 6명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이 사건은 ‘독립군정서사건(獨立軍政署事件)’으로 국내 언론에 보도되었는데, 이는 강철구가 북로군정서에서 활동했던 과거의 경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로군정서 세력은 청산리대첩 이후 연해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대한독립군단으로 개편되는 등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후 동대문경찰서에 취조를 받았으며, 1923년 3월 29일 경성지방법원 제7호 법정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등의 혐의로 징역 2년 형을 구형받았고 3월 30일 징역 1년의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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