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림
金升林1891. 7. 28 ~ 1952. 1. 2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학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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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1년 7월 28일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학산면(鶴山面) 지내리(池內里)에서 출생하였다. 학산면의 만세 시위는 1919년 3월 29일부터 시작되었다. 학산리(鶴山里) 주민 200여 명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관공서를 공격하였다. 이후 학산면에서는 4월까지 독립 만세 시위가 지속해서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전국 각지에서 만세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향리에서도 만세 시위를 전개하겠다고 결심하였다. 이에 서당에서 같이 공부하던 여규병(呂圭炳)·정화중(鄭化中)·여규방(呂圭傍)·여규일(呂圭一)·여중선(呂中仙)·박두업(朴斗業)·박원보(朴元甫) 등과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당시 영동-무주(茂朱) 간 도로공사가 진행되고 있었으므로 많은 면민을 동원할 수 있는 4월 16일을 거사 일로 잡았다. 한편, 3월 30일 도로공사에 동원된 주민들이 이채연(李彩然)·이헌주(李憲周) 등의 주도로 한 차례 만세 시위를 전개한 바 있었다. 4월 16일 주모자로서 영동-무주 간 도로공사 현장에 나가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공사에 동원된 면민들에게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수백 명의 주민이 시위에 동참하였다. 이들을 지휘하여 학산주재소를 공격하여 주재소의 기물을 완전히 파괴하고, 영동-무주 간 도로에 가로수로 심으려고 준비한 뽕나무 묘목 수만 그루를 모두 소각하였다. 이날 출동한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19년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7월 2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공주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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