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천
金順千1894. 4. 19 ~ 1951. 12.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정미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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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94년 4월 19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사성리(沙城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순천(順天), 재순(在順) 등이 있다. 대호지면의 만세 시위는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유생들을 중심으로 면장 이인정(李寅正) 및 면사무소 직원, 지역 유지, 그리고 천도교(天道敎) 인사들이 연합해 추진하였다. 거사 일은 정미면의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동리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거사 직전 신체 건강한 청년들을 뽑아 선봉행동대를 편성하였는데 여기에 참여하였다. 주민들에게 배포할 애국가와 독립선언서의 등사 및 주민 참여의 독려는 면사무소의 시설과 행정력을 이용하여 준비되었다. 면장 명의의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서를 각 마을에 통지하여 도로 보수를 명분으로 주민들이 모이도록 하였다. 4월 4일 아침 농기구를 지참한 주민들이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면장 이인정은 주민들을 집결시킨 실제 목적은 만세 시위이고 천의장터를 향하여 행진할 것이니 동참하라고 연설하였다. 이에 많은 주민이 호응하자 다른 행동대원들과 함께 애국가 및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송재만에게 태극기를 받아 게양하였다. 독립선언서 낭독이 끝난 뒤 대형 태극기를 들고 대열의 선두에 서서 천의장터로 행진하였다. 천의장터로 향하는 길목에 동리별로 주민들이 모여 있다가 속속 대열에 합류하면서 천의장터에 시위대가 도착했을 때는 정미면의 주민들까지 1,000여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시위대와 함께 시장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고창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4시경 만세 시위가 마무리되던 중 일제 경찰의 발포로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천의주재소로 달려가서 주재소 습격 시위에 참여하였다.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다음의 제2차 거사를 기약하고 자진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날 시위 직후 홍성헌병수비대가 대호지면으로 출동하여 만세 운동 참여자에 대한 색출과 체포를 진행하였는데, 도피하여 체포를 모면하였다. 그러나 1921년 1월 21일 체포되어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1921년 5월 23일 공주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3개월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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