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환
金世煥1884. 6. 6 ~ 1955. 7. 1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정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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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4) 1884년 6월 6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백곡리(白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홍범섭(洪梵燮)은 상경하였다가 「독립선언서」를 입수해 귀향하였다. 그는 평소 친분이 있는 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서 독립선언서를 함께 읽고, 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협의하였다. 만세 시위 준비 과정에서 이들의 계획을 알게 되어 임창순(任昌淳)·임철재(任哲宰)·김필현(金弼鉉)·윤구학(尹龜學)·이건호(李建鎬)·이태호(李台鎬)·조종원(趙鍾元)·박춘서(朴春西)·윤기중(尹箕重)·윤봉학(尹鳳鶴)·이건직(李建直, 建植)·우달명(禹達明) 등과 함께 참가하였다. 주모자들은 지역 주민이 많이 모이는 정산면 장날인 4월 5일을 거사 일로 정했다. 4월 5일 서정리(西亭里)에서 정산시장이 열리자, 오후 3시경부터 홍범석·임의재·윤석희·홍세표·박상종 등과 함께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소식에 일본 헌병은 즉각 출동하여 만세 시위를 제압하였다. 이에 홍범석·임의재 등 다른 동지들과 함께 서로 손을 잡고 정산시장으로 재진입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며 재차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대 100여 명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일본 헌병은 해산을 요구하며 주모자 체포에 나섰다. 이때 체포되어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1919년 4월 6일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형(笞刑) 90도(度)의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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