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조
金聖祚1902. 10. 2 ~ 1920. 6. 1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3)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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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3) 1902년 10월 2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 구포리(龜浦里, 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3·1운동이 일어날 당시 동래고등보통학교(東萊高等普通學校, 현 동래고등학교) 재학 중이었다. 1919년 3월 7일 김귀룡(金貴龍)·엄진영(嚴進永)·고영건(高永建)·김인호(金仁浩) 등 동래고보 학생 대표가 서울에서 온 학생 대표들과 부산상업학교(釜山商業學校, 현 개성고등학교) 학생 대표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해 받으면서 구포의 만세 시위가 계획되었다.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졸업반인 4학년생들 사이에서 만세 시위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3월 10일 동래고보 선배로서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에 다니던 곽상훈(郭尙勳)이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내려와 수학 교사 이환(李環)을 만나 만세 시위에 대하여 상의하고 준비에 가담하였다. 주동 인물들은 동래면 장날인 3월 13일 오후 2시를 거사 일로 정하고, 3월 11일부터 13일에 걸쳐 500여 매의 독립선언서와 대형 독립기, 그리고 수백 매의 태극기와 고종의 독살설을 담은 「오왕약살(吾王藥殺)」이라는 격문도 준비하였다. 만세 시위 계획에 찬동하여 다른 학생들과 함께 동래면 장날인 3월 13일 동래군청 앞에 모였다. 오후 2시가 되자 엄진영이 동래군청 앞 망미루(望美樓)에 올라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 만세를 선창하였다. 이를 신호로 시위대와 함께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 출동한 일본 군경과 기마병에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부산감옥 복역 중 심한 고문으로 얻은 병으로 1920년 2월에 가출옥하여 6월 16일에 운명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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