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응칠
高應七미상 ~ 1908. 5. 4
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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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6) 생년월일과 출신지가 전해지지 않으나 의병 운동에 참여할 당시에는 황해도 해주(海州) 일대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1907년 이인영·허위·민긍호·이강년·이은찬 등이 주도한 13도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이 실패로 끝났다. 이때 13도창의군에 참여하였던 허위·이은찬 등은 경기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연합 의병을 새로이 결성하였다.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의병부대들은 이들과 연계하여 의병 활동을 펼쳤다. 그중 신경칠(辛景七) 의병부대는 황해도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며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신경칠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소무장(所務長)이란 직책을 맡았다. 신경칠 의병부대의 규모는 약 200명이었다. 소무장으로서 주로 활동한 지역은 황해도 해주(海州)와 장연(長淵) 등지였다. 이 지역에서 신경칠 의병장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독자적으로 부대를 통솔하기도 하였다. 주요한 활동으로 군자금 모집, 밀정 처단, 일본군 헌병대와 유격전 등을 수행하였다. 1908년 3월 3일 신경칠 의병부대는 해주부(海州府) 서문(西門) 밖 70리 부근에서 선유위원(宣諭委員)을 체포한 후, ‘조유문(詔諭文)은 일본인 간적(姦賊) 중에서 나온 것으로 실제 황칙(皇勅)이 아니고 선유위원도 일본인 사환(使喚)’이라고 준엄히 꾸짖은 후에 풀어준 일도 있었다. 한편, 소무장으로 활동하던 지역은 일본군 헌병대 경성분대(京城分隊) 마산관구(馬山管區)의 관할 지역이었다. 1908년 당시 황해도 방면에서 의병 탄압을 위해 파견된 일본군 헌병대는 스즈키(鈴木) 헌병 중위가 이끄는 지대(支隊)였다. 스즈키 지대는 의병 탄압을 강화하고자 정밀 수색 작업을 실시하였다. 이처럼 일본군 헌병대의 압박이 강화되자 해주 소라면(所羅面) 헌대촌(憲代村)으로 잠입하였다. 이러한 정보를 탐지한 스즈키 지대는 헌병 9명을 급히 파견하였다. 1908년 5월 4일 오전 5시경 헌대촌에 주둔하던 의병들은 일본군 헌병파견대의 기습적인 공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심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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