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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숙

金成淑

1870. 12. 4 ~ 1927. 9.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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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성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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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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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함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0년 12월 4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함안면(咸安面) 강명리(康命里)에서 태어났다. 함안면 만세 시위는 고종의 장례식 참여차 상경하였다가 서울에서 전개된 독립선언식과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3월 5일경 귀향한 조한휘(趙漢輝)·한종순(韓鍾淳)·이찬영(李讚榮)·조병흠(趙丙欽)·박건병(朴建秉)·강기수(姜琪秀)·한관열(韓灌烈) 등 청년 유지들에 의하여 계획되었다. 이들은 일본 군경과 밀정의 눈을 피해 모의를 거듭하여 3월 19일의 함안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제작하는 등 준비를 서둘렀다. 또한 여러 지역에 연락원을 보내어 동지들로 하여금 군중을 규합하여 거사 당일에 약속한 장소로 모이도록 하였다. 3월 19일 이른 아침부터 군중이 함안면의 시장에 모여들자, 오후 12시경 주도 인물들은 비봉산에 올라 고천제(告天祭)를 지낸 후 군중과 함께 봉성동(鳳城洞)으로 집결하였다. 독립선언서와 태극기가 군중에게 배부되었고 태평루(太平樓)에 대형 태극기가 나부끼는 가운데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다. 이날 시위대의 한사람으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오후 2시 3,000여 명으로 늘어난 군중과 함께 함안경찰관주재소로 시위행진하였다. 이때 마산경찰서장 기타무라(北村)와 현지 경찰이 무력을 행사하려 하자, 격노한 군중과 함께 도끼·몽둥이·돌 등을 들고 주재소로 들어가 공문서를 파기하였다. 군청 청사 안으로 들어가서 함안군수 민인호(閔麟鎬)를 붙잡아 제복과 모자를 벗기고 독립 만세를 외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시위 군중과 함께 등기소·우편소·부산지방법원 함안출장소·함안심상소학교·함안공립보통학교 등으로 몰려가 투석하며 유리창·판자벽 등 기물을 파괴하였다. 오후 5시 40분경 마산의 일본군 수비대와의 연락 전화가 불통되자 비상사태가 돌발한 것으로 짐작하여 마산 중포병대대 병력 16명이 출동하였고, 현지 경찰과 합세하여 총검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검거하였다. 이 시위에서 체포되어 1919년 8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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