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경
金善慶1864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서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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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64년경 평안북도 위원군(渭原郡) 서태면(西泰面) 송계동(松溪洞)에서 출생하였다. 위원군의 독립 만세 시위는 기독교와 천도교 등 종교 세력 주도로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6일 위원면에서 기독교 세력을 중심으로 최초의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고, 3월 10일에는 천도교도를 중심으로 위원읍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두 번째 시위에는 수천 명이 참여한 가장 큰 규모의 만세 시위였다. 위원군에서 일어난 독립 만세 시위 소식과 만세 시위 현장에서 배포된 독립선언서가 중국과의 국경 지역인 서태면에도 전달되었다. 독립선언서를 읽고 그 취지에 공감하여 동리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할 것을 결심하였다. 3월 중 서태면 곳곳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되자 주민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였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이끄는 등 서태면의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일본 헌병에 붙잡혀 위원헌병분견소로 연행되었다. 평양지방법원 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10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전 민족 일반이 만세를 크게 외치는 것이 무슨 보안법에 해당하는가. 더구나 맨손으로 대오를 정제하고 만세만 크게 외친 것은 그 행동이 정당함과 사실이 광명함은 만국 공법과 세계의 공안(公眼)에 비추어 봐도 부끄러울 바가 없다. 그런데 복심법원에서는 본인에게 부당한 법률을 적용했기 때문에 억울함을 견딜 수 없다”라고 당당히 불복 사유를 밝히며 상고하였다. 1919년 7월 24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됨으로써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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