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석근

金碩根

1894. 9. 26 ~ 1947. 4. 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석근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7)

관련 사건

  • · 의성군 비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07) 1894년 9월 26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비안면(比安面)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석근(金石根)이다. 1919년 3월 12일에 일어난 비안면의 만세 시위는 당시 비안공립보통학교 학생이던 박만녕(朴萬寧) 등의 주도로 학교 뒷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같은 날 쌍계교회 목사인 박영화(朴永和)가 주도하는 만세 시위도 쌍계동에서 일어났다. 이날의 쌍계동 만세 시위에 감응해 “동포가 독립운동을 일으킨 이상 우리도 이대로 잠자코 있을 수 없다”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거주하던 동부동의 임재호(林在虎)·박홍섭(朴洪燮), 그리고 서부동의 박후도(朴後度) 등과 함께 만세 시위를 모의하였다. 이들은 120개의 태극기를 만드는 등의 시위 준비를 마치고는 13일 밤에 서부동 우시장으로 향하였다.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 만세를 선창하며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에 시장에 모여 있던 40~50명의 주민이 호응하면서 행진이 시작되었다. 이때 동부동 쪽에서도 군중이 합류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100명에 달했다. 시위대는 시장을 돌며 밤늦도록 시위를 계속하다가 해산하였다. 이 과정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검거를 피한 임재호·박홍섭·박후도 등은 3월 16일 비안면 장날에 맞춰 다시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1919년 4월 7일 보안법과 조선형사령 제42조 위반 혐의로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다. 같은 해 4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