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윤환
高允桓1845 ~ 1915. 8.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이강년 의진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845년경 경상북도 문경군(聞慶郡) 산양면(山陽面) 신전리(薪田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개성(開城)으로, 문경에서 개성 고씨 집성촌을 이루어 대대로 살아왔다. 임진왜란 전 예문관(藝文館) 직제학(直提學)을 지낸 퇴산(退山) 고사원(高士原)의 후손이다. 자는 무현(武顯)이며, 호는 쌍산(雙山)·장산(長山)이다. 아들 고유훈(高有勳)과 함께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강년 의병장은 1896년 유인석(柳麟錫)의 호좌의진에 합류하였다가 을미의병이 마무리되자 유인석 휘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1907년 봄 일제에 의한 고종 강제 퇴위와 군대해산에 분개하여 의병 봉기를 도모하였다. 이때 이강년 의병부대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강년 의병부대는 제천의 천남(泉南) 전투에서 승리한 후 주천으로 이동하여 지휘 체계를 정비하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였다. 8월 이강년은 제천·청풍·단양·영춘의 4군(四郡) 지역에서 포군을 모아 온 김상태(金尙台)와 40여 의병장들에 의해 호좌의병장(湖左義兵將)에 추대되었다. 이강년은 김상태를 중군장에 임명하고, 1907년 거의에 큰 역할을 한 윤기영을 전군장으로 임명하여 본격적으로 의병 항쟁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호좌의진에서 좌종사(坐從事)를 맡아 활동하였다. 본래 좌종사는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지만, 거주하던 곳을 중심으로 일본군의 동태를 파악하거나 지역 지리 정보를 전달하여 의병을 지원한 이들로 여겨진다. 또 유격전을 전개하던 의병부대가 이동하거나,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은신해야 할 때 숙소나 음식을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하였다. 이 무렵 이강년 의병부대는 조령(鳥嶺)·수안보(水安堡)·제천·문경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며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그리하여 이들은 충청, 경기 가평 화악산(華嶽山) 일대, 강원, 그리고 경북 북부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돌아다니며 일본군을 상대로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08년 (음)6월 4일 이강년이 청풍 까치성[鵲城] 전투에서 다친 채 체포되고 말았다. 이후 산중에 은거하며 복수할 시기를 기다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채 1915년 8월 23일 별세하였다. 그의 아들 고유훈도 이강년 의병부대에서 좌종사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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