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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옥

金明玉

1876. 7. 1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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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명옥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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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구(楊口)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양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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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0) 1876년 7월 14일 강원도 양구군(楊口郡) 동면(東面) 팔랑리(八郞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말 양구면 용호리(龍湖里)의 정승원(鄭昇源), 함춘리(含春里)의 최우명(崔遇明)·김병하(金炳夏) 등의 천도교 지도자들이 독립 만세 시위 준비에 나서 대형 태극기와 ‘대한 독립 만세’가 쓰인 깃발을 만들었다. 동면 팔랑리에 사는 김창헌(金昌憲)에게도 연락하여 동면에 사는 천도교인이 합세토록 하였다. 거사 날짜로는 4월 5일을 택하였다. 양구면의 장날은 4·9일이었으나 굳이 5일을 택한 것은 헌병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천도교 지도자들은 4월 5일 시위 계획을 세운 후 그때까지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는 판단에 다시 4월 2일로 날짜를 당겨 잡았다. 이때 함춘리의 최영구(崔榮九)와 함께 천도교인들에게 변경 사항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4월 1일 밤부터 때아닌 눈이 내리기 시작하여 다시 시위 날짜를 하루 늦추어 3일로 결정하였다. 시위 날짜를 자주 변경했음에도 발각되지 않았던 것은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시위를 계획하고 연락을 취해 비밀이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4월 3일 양구군청이 자리한 양구면 죽곡리(竹谷里)에는 수십 명의 천도교인이 모였다. 이들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양구군청 앞으로 행진하여 독립 만세를 외쳤다. 만세 시위를 주도한 천도교인 대부분이 이 자리에서 붙잡혔다. 이때 정승원·최우명·김병하·김창헌·최영구 등과 함께 붙잡혔다. 이들 외에도 양구면 용호리의 박의순(朴義淳), 대동리의 엄건섭(嚴建燮)·조돈민(趙敦敏) 그리고 동면 팔랑리의 장흥도(張興道)·장호면(張鎬眠), 동수리의 최기호(崔寄浩) 등 모두 18명이 붙잡혔다. 1919년 5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개월 형을 선고받자 항소하였다. 6월 27일 경성복심법원이 기각하자 다시 상고하였으나,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도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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