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억
金商億1885. 10. 22 ~ 1960. 9. 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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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5) 1885년 10월 22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신곡리(新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홍성시장의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고 있음을 감지한 가산리(佳山里)의 서당 훈장 민영갑(閔泳甲)은 서울 사정에 밝은 이재만(李載萬)과 금마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협의하였다. 이후 같은 지역의 김재홍(金在洪)·최중삼(崔仲三)·조재학(趙載學)·조한원(趙漢元) 등이 동지로 결합하면서 만세 시위의 계획은 시작되었다. 이들의 계획은 4월 1일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에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연극 공연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때 모인 주민들에게 독립을 호소하여 이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전개한다는 것이었다. 4월 1일 예정대로 연극이 공연되었다. 민영갑·이재만·김재홍·최중삼·조재학·조한원 등도 관객으로 참석하였다. 이들은 연극이 공연 중이던 오후 8시경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면서 관객으로 참석한 주민들에게 만세 시위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관객 수십 명이 이에 호응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동참하였다. 이것은 금마면의 첫 번째 만세 시위였는데,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제 경찰에 의해 특별한 충돌 없이 당일 해산하였다. 연극 공연장 만세 시위의 중심인물 민영갑·이재만 등은 가산리 주민들과 함께 다음날인 4월 2일 홍성시장으로 나가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홍성시장에 나갔다가 이 모습을 보고 공감하여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동참하였다. 홍성시장의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만세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4월 19일 홍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笞刑) 90도(度) 처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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