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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구

金相久

1899. 1. 4 ~ 1971.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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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상구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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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淸道)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청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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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9년 1월 4일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 운문면(雲門面) 신원리(新院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본적지에 거주하면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고종(高宗)의 인산(因山)에 참가하려고 상경하였다가 만세 시위를 목격하였다. 귀향 후 3월 10일 김종태(金鍾台)를 만나 고향에서 만세 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같은 달 15일에는 손기현(孫琪鉉)·김재화(金在華)가 격문 20여 매를 방음(芳音)·대천(大川) 등지에 부착할 때 함께하였다. 3월 17일 김진효(金鎭孝)·손한조(孫漢祚)·김용구(金龍久)·홍해성(洪海性)·김종식(金鍾軾)·김종수(金鍾秀) 등과 함께 문명학교(文明學校)에 모여 만세 시위를 위한 결의를 재차 다졌다. 그러나 15일 부착한 격문으로 인해 3월 18일 일제 경찰에 이들 대부분과 같이 취조를 받았다. 취조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이들과 함께 만세 시위를 단행하기로 결정하고 운문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우선 김종태가 2척 길이의 명주 수건에 ‘대(大)’를 적자, 김진효의 종용에 따라 4명의 면서기가 각각 ‘한(韓)’, ‘독(獨)’, ‘립(立)’, ‘만(萬)’을 썼다. 이후 또 다른 사람이 ‘세(歲)’를 적었다. 다시 김종태가 ‘독립회(獨立會)’라고 적으면서 ‘대한 독립 만세’ 깃발이 만들어졌다. 김진효가 만세를 선창하고 김종태가 깃발을 들고 대열을 이끌었다. 이 대열에 참가하여 함께 만세 시위를 하였다. 이 일로 3월 20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와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7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출옥 이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려는 김진효에게 100원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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