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
金富植1878. 2. 28 ~ 1933. 2.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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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78년 2월 28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현 당진시) 두산리(杜山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부안(扶安)이다.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과 정미면 천의장터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고종황제(高宗皇帝)의 인산(因山)에 참례하려고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의 유생들은 서울로 상경하였다. 이들은 서울 체류 중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전개된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귀향하여 지역에서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귀향한 남주원 등으로부터 서울의 만세 운동 소식을 접한 면장 이인정(李寅正) 및 민재봉(閔載鳳)·강태원(姜泰沅)·송재만(宋在萬)·김동운(金東云) 등 면사무소 직원들과 이춘응(李春應)·남상집(南相集)·김홍균(金烘均)·남정혁(南廷爀)·홍월성(洪月星)·한운석(韓雲錫) 등의 지역 유지, 백남덕(白南德)·홍순국(洪淳國) 등 천도교(天道敎) 세력은 만세 운동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오일장이 열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정미면 천의장터를 만세 운동의 장소로 결정하고, 장날인 4월 4일 대대적인 만세 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그 실행을 위해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고, 면사무소의 시설과 행정력을 동원하여 구체적으로 준비하였다. 면사무소는 송재만을 중심으로 만세 시위 당일 주민들에게 배포할 독립선언문을 등사하였고, 대열의 선두에 세울 대형 태극기도 제작하였다. 지역의 존경받는 한학자였던 한운석은 이때 함께 나눠줄 애국가(愛國歌)를 작사하였다. 김동운·강태원은 효과적인 주민의 참여를 위해 면장 명의로 관내 도로 보수의 명분으로 주민을 참여시키려는 목적에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서를 작성하였다. 그것은 4월 4일 면내 가호당 주민 1명씩 출석하여 도로 보수에 참여하라는 내용이었다. 이인정 면장은 각 마을의 구장(區長)들에게 이 공문서를 발부하여 주민들에게 통지하도록 하였다. 구장으로부터 연락받은 대로 4월 4일 아침 농기구를 지참하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모였다. 면장 이인정이 나서 도로 보수는 위장된 목적이며 실제 목적은 독립 만세 운동이니 동참하라는 연설을 듣고, 독립선언문을 받아 보고 이에 공감하여 바로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선두에 대형 태극기를 앞세우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대호지면사무소에서 약 7킬로미터 떨어진 천의장터로 향하였다. 천의장터에서 정미면의 주민까지 1,000여 명으로 불어난 군중과 함께 시장 곳곳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오후 4시경 만세 시위가 마무리되었다. 주변의 식당으로 분산하여 식사하던 중에 천의주재소와 지원 나온 당진경찰서의 경찰들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4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에 분노하여 다른 주민들과 함께 천의주재소로 달려가서 주재소를 향해 돌을 던지는 등의 시위에 참여하였다.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한 후 제2차 거사를 기약하고 자진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19년 4월 22일 서산경찰서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태형(笞刑) 90도(度) 처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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