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金大健미상 ~ 1920. 8. 2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자성기독청년회
- · 산서노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관련 사건
- · 1919년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9) 자료의 한계로 정확한 출생일자 등은 알 수 없다. 평안북도 위원군(渭源郡) 출신이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김대건(金大鍵)과 김대건(金大建)이다. 기독교인으로 1917~1919년 조선예수교장로회 평북 강계군(江界郡) 포교담임(布敎擔任)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강계군에서는 만주의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서간도독립단(西間島獨立團) 등으로부터 국내에 파견되어 단원과 자금을 모집하던 김태한(金泰漢) 등이 체포되었다. 그리고 1920년 7월에는 강계군에서 독립운동 관련 사건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었을 때, 장로교회 목사로 붙잡혀서 취조를 받았다. 이전에는 이때 체포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료의 발굴로 새로운 활동 사실이 밝혀졌다.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동년 7월부터 연통제(聯通制)가 실시되었다. 서북지방은 중국과 국경이 맞닿는 교통의 요지로 연통제가 활발히 전개되었고, 서북지방의 기독교인과 관련 단체가 참여하였다. 1920년 8월 김낙주(金樂冑)·전형락(田亨洛)·전주찬(田周燦)·김이문(金以文)·김문식(金文植) 등 448명과 함께 일제에 붙잡혔다. 이후에도 강계군의 기독교 장로로서 활동하다가 1921년 6월 4일 강계경찰서에 또 체포되었다. 1926년 1월 13일 평북 자성군(慈城郡)에서 평북자성군야소교회(平北慈城耶蘇敎會)의 발기에 의해 자성기독청년회(慈城基督靑年會)가 창립되자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1928년 9월 초산(楚山)·위원·후창(厚昌)·자성 등 각 지역 교회에서 총대(總代)가 모여 개최한 산서노회(山西老會)에서 부회계(副會計)로 선출되었다. 1929년 9월 6일경 경성 서대문정 새문안예배당에서 열린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8회 총회에 강계군의 총대로 참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송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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