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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중

金琪中

1921. 3. 16 ~ 2010.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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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기중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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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일본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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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조선청년마르크스주의연구회(c
  • · y
  • · m
  • · s)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5) 1921년 3월 16일 전라남도 광주(光州)에서 출생하였다. 김화기(金和基)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41년 일본 이시카와현(石川縣) 가나자와시(金澤市) 소재 제4고등학교 문과에 재학 중 비밀결사 ‘조선청년마르크스주의연구회c·y·m·s’의 결성에 참여하였다. ‘조선청년마르크스주의연구회’는 1941년 2월경 제4고등학교 한인 재학생들이 결성한 사회주의 연구 독서 모임이다. 박응포(朴應苞)·조옥래(趙玉來)·최동명(崔東明)·김기억(金基億)과 함께 조직을 구성하고 회칙 등을 만들었다. 조국의 독립과 혁명을 목적으로 활동하며 매주 1회 독서회를 개최하고 한인 유학생들에게 회원 가입을 권유하였다. 조선청년마르크스주의연구회의 회원들은 신입생 환영회·친목회 등 한인 학생의 모임을 활용해 동지를 모으고,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활동을 하였다. 독서회 모임과 환송회·송별회 자리에서 민족 차별과 일제의 황민화 정책을 비판하며 독립운동에 나서야 함을 역설하였다. 학교 교육에서 일본어 사용을 강요하는 정책은 민족에 대한 폭압이며, 일본식 성명 강요는 우리 문화를 무시하고 멸망시키는 일이므로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우리 민족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공유하고, 교육을 통해 문화를 향상하고 민족의식을 자각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연구회 회원들은 인접한 도야마현(富山縣)의 도야마고등학교와 도야마약학전문학교(富山藥學專門學校)의 한인 학생과 여러 차례 만나 독립운동 방안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민족을 해방시키려면 독립을 실현해야 하며, 사회주의운동 방식으로 급속히 독립을 달성해야 한다고 논의하였다. 위와 같은 활동을 하다가 1942년 2월 18일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4월 18일 가나자와지방재판소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43년 4월 30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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