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수
金德洙1885 ~ 1920. 11. 1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5년 출생하였다. 다른 기록에는 1886년 출생한 것으로 되어 있다. 출생지와 가족관계는 자료의 한계로 알기 어렵다. 만주로 건너간 경위도 알기 어려우나 1920년경 북간도 훈춘현(琿春縣) 대육도구(大六道溝)에 거주하였다. 1920년경 훈춘한민회(琿春韓民會) 소속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훈춘한민회는 1910년대 이동휘(李東輝)를 따르던 기독교인들이 조직한 기독교우회(基督敎友會)가 기반이 되어 3·1운동 후 조직을 무장투쟁 기관으로 개편해 성립된 독립군단(獨立軍團)이었다. 훈춘현 4도구 소황구(小黃溝)에 본부를 설치하였고, 회장은 윤동철(尹東喆), 사령관 최덕준(崔德俊), 군무부장 최경천(崔慶天) 등이었다. 1920년대 중반 250여 명의 독립군에 소총 300정, 기관총 3문을 보유한 훈춘 지역 최대 독립군단이었다. 이 같은 훈춘한민회 군무부 소속원이 되어 훈춘현 3도구 및 4도구 등에서 독립군의 활동을 방해하고 위해까지 하는 친일파를 척결하는 활동을 벌였다. 아울러 군단의 세를 더욱 확대하려고 젊은 한인 청년들을 독립군으로 가입시키는 활동도 수행하였다. 훈춘한민회를 비롯해 3·1운동 후 서북간도지역에 성립된 많은 독립군단은 수시로 독립군 유격대를 국내로 파견해 일제를 상대로 한 무장활동을 전개하였다. 1920년 중반 경 독립군의 공격으로 일제는 식민지 한국 경영에 심각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에 일제는 1920년 10월 약 2만 명에 이르는 일본군 병력을 서북간도로 침입시켰다. 조선군 제19, 20사단을 주 침략군으로 하고, 뤼순(旅順) 주둔 관동군(關東軍)과 시베리아 파견군, 북만주 파견대 등을 참가시켰다. 서북간도로 들어 온 침략군들은 이주 한인사회와 독립군 기지를 처참하게 짓밟는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을 자행하였다. 훈춘을 향한 병력은 조선군 제19사단 소속의 75연대였다. 이들 일본군에게 붙잡혀 오도구 남방 2킬로미터 떨어진 산중으로 끌려가 1920년 11월 1일 참형에 처해져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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