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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복

金末福

1909. 6. 25 ~ 1985.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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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말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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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梁山)문화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양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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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통도사(通度寺)
  • · 통도중학교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9년 6월 25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하북면(下北面) 지산리(芝山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이명은 김수성(金水成)이다. 14세의 나이에 불교에 귀의하여 통도사(通度寺)에서 출가하였다. 통도사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한용운(韓龍雲)의 『님의 침묵』 등의 저서를을 읽으며 스스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신학문을 배우려고 1933년 일본으로 건너가 나고야(名古屋) 불교전수학교에서 공부하였고, 1936년 도쿄(東京)에 있는 불교계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學)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과 「조선 독립선언서朝鮮獨立宣言書」를 읽고 커다란 감명을 받았다. 졸업과 동시에 귀국하여 1939년 양산의 종공립학교인 통도중학교(通度中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한민족의 역사, 언어, 문학 등을 가르치며 인재 양성에 진력하였다. 우리 민족의 찬란한 역사와 한글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어떤 민족이라도 자신의 언어만 가지고 있으면,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너희는 희망을 잃지 말고 열심히 공부하거라. 우리 민족의 독립은 너희에게 달려 있다”라고 역설하였다. 또한 같은 학교 교사 조병구(曺秉球, 1907~?)로부터 고종황제의 인산(因山) 때 사용되었던 만장(輓章)의 내용을 입수하여 학생들에게 교습하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와 그 정책들을 비판하고 항일 독립사상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런데 전라남도 선암사에서 온 학생 이승권이 여수(麗水)에서 일본 경찰의 검문을 받는 도중에 이 같은 내용이 발각되었다. 1941년 9월 양산경찰서 형사대에 의해 학교에서 다른 교사들과 함께 붙잡혔다. 1942년 5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부산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고 1943년 12월 14일 출옥하였다. 출옥 5일 만에 ‘사상범’이라는 이유로 대구보호관찰소로 송치되기도 하였다. 광복 후 1945년 통도사 주지로 임명되어 수도승의 훈육과 종무(宗務) 활동에 전념하였다. 이후 교육보국의 이념을 품고 다시 교육계에 투신, 1964년 3월 보광중학교(통도중학교 후신) 교장으로 취임하여 10여 년간 후진 양성에 이바지하다가 1975년 정년 퇴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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