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재
金萬財1895. 11. 6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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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4) 1895년 11월 6일 평안북도 벽동군(碧潼郡) 오북면(吾北面) 북상동(北上洞)에서 태어났다. 평북 의주군(義州郡) 주내면(州內面)에 거주하면서 1926년부터 1927년까지 2년여에 걸쳐 고영태(高永泰) 등과 함께 일제의 눈을 피해 피신하면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7년 1월 10일 오전 8시경에 의주군 의주면 서호동 승예도(勝刈島)에 피신하고 있다는 제보를 듣고 의주경찰서와 구룡포주재소원과 서호동파출소원이 힘을 합쳐 수색하였으나 발견하지 못하였다. 검정도(黔庭島)로 옮겨 피신하였지만 결국 붙잡혔다. 일제의 보고에 의하면 1924년에 중국 콴뎬현 ‘모루전자’에 근거를 둔 ‘모단대(某團隊)’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금 활동을 펼쳤다. 이뿐 아니라 1927년에도 국경을 넘어 의주군에서 네 번이나 군자금을 모집하고 읍내에 잠복하여 읍내의 정황 등을 탐지하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공판 과정에서 1926년부터 수십 차례 의주군의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권총을 갖고 다니면서 의주군 주내면 서호동 일곡리 이순익(李舜翼), 홍남동 최형건(崔亨健) 등 모두 열두 명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재판 과정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부인하기도 하였다. 1927년 3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 강도미수, 약취미수(掠取未遂), 살인미수, 협박미수 등의 혐의로 징역 6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다가 1930년 12월 21일 가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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