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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희

姜順熙

1868. 10. 3 ~ 1929.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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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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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제천(堤川)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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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 · 중기의병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868년 10월 3일 충청북도 제천(堤川)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字)는 성약(聖若)이며, 호(號)는 진산(晉山) 또는 치재(恥齋)이다. 강대연(姜大淵)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출신지의 자세한 주소는 알 수 없으나 제천군 읍내면(邑內面) 두학리(頭鶴里, 현 제천시 두학동) 출신이라는 설이 있다. 제천 두학리 출신 설은 조선 후기 문신 강유(姜瑜)의 후손인 진주 강씨가 두학리 일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대대로 살았다는 점, 말년에 진주 강씨 문중에서 세운 사당이자 현 제천시 두학동에 위치한 박약재(博約齋)에서 이강년의 종군일기를 수집·정리하였다는 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신빙성이 높다. 을미사변과 단발령 실시에 항거하여 유인석(柳麟錫)이 자신의 고향인 충북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이에 찬동하면서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나 1896년 3월 무렵부터 의병의 기세가 주춤하면서 마무리되는 양상을 보이자 다시 돌아와 학문 연구에 매진하였다. 그러던 중 1905년 일제의 을사늑약 체결과 외교권 박탈에 분노한 정운경(鄭雲慶)이 의병을 일으키자, 이규현(李奎顯)·강난수(姜蘭秀)·장익환(張益煥) 등과 함께 같은 해 9월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의병장 정운경은 같은 충북 제천 출신으로, 이미 을미의병 당시 유인석 부대에서 함께 활동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제천·단양·영춘·청풍 등에서 의병을 모으고 의병부대를 정비하던 중 원주진위대의 습격을 받고 정운경이 잡혀 부대가 해산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07년 7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일제는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그 다음 달에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면서 식민지 지배를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하였다. 해산된 군인이 의병에 가담하면서 의병 항쟁의 판도가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문경 출신 이강년이 다시 의병을 일으키자 합류하였다. 이강년은 의병부대를 이끌고 1907년 8월 13일 제천으로 진입하였다. 이때 주천에서 의진을 일으켜 제천으로 온 민긍호(閔肯鎬)와 합류하여 의진을 재정비하였다. 민긍호 부대와 연합한 이강년 부대는 제천으로 들어와 천남(泉南)에서 야영 중이던 일본군 1개 소대를 습격하여 일본군 5명을 사살하고, 1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8월 19일 연합 의병부대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주천으로 이동하였다. 주천에 도착하여 이강년이 40여 의병진의 추대로 도창의대장이 되면서 지휘부를 재편성할 때, 참모부(參謀部) 사서(司書)로 임명되었다. 이후 사서로서 문필(文筆)에 관한 일을 담당하였다. 충주성 공략에 실패한 이강년 부대는 이후 단양·영월 일대를 중심으로 유격전을 전개하다가 단양 복상골 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피해를 입고 경기도 화악산 부근으로 근거지를 옮겼다. 그곳에서 겨울을 난 이강년 부대는 강원도 일대를 거쳐 다시 제천으로 내려와 경북 북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항쟁을 계속하였으나 이강년이 1908년 7월 2일 까치산(鵲城山)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 체포되었다. 이강년이 순국하기까지 의병부대를 따라다니며 견문한 사실을 기록하고 자료로 모았다. 고향 제천으로 돌아와 의병에 참여하여 보고 들은 내용을 기록하여 이강년 순국 이후 박정수(朴貞洙)와 함께 2권 1책으로 구성된 목판본 『운강선생창의일록(雲岡先生倡義日錄)』을 편찬하였다. 박정수가 정리하던 것을 이어받아 이화중(李和重)과 함께 마무리하여 간행하였다. 또 1907년 제천 두학리에 위치한 박약재에서 3권 3책으로 이루어진 필사본 『운강선생유고(雲岡先生遺稿)』 2책 부록 권2에 수록된 「창의사실기(倡義事實記)」, 「발문(跋文)」을 저술하였다. 전투 기록을 정리하던 박정수가 사망하자 이를 이어받아 1916년에 완성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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