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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오

金斗五

1911. 11. 9 ~ 1945.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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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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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慶州)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경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감포적색농민조합
  • · 가나다소년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감포적색농민조합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911년 11월 9일 경상북도 경주 양북면(陽北面) 전촌리(典村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진식(鎭植) 또는 화식(和植)이다. 1928년 3월 경북 경주 『중앙일보(中央日報)』 감포지국(甘浦支局) 기자로 있으면서 보통문예잡지(普通文藝雜誌) 전선지국(全線支局)에 종사하였다. 이때 경주 지역 청년운동을 아우르는 경주청년동맹(慶州靑年同盟)이 발기되는 동시에 면 단위 지부가 조직되었다. 1928년 5월 6일 허장환(許璋煥) 등이 조직한 양북지부(陽北支部)의 회원으로 가담하여 봉건적인 미신 타파, 회원 교양 함양, 문맹 퇴치에 노력을 기울였다. 1932년 1월 10일경 기자직을 그만두었다. 1933년 10월경에는 농민야학회를 개설하여 명예교사로서 열성을 다하였다.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초등교육 수혜조차 받지 못한 무산 아동과 청소년에게 한글을 중심으로 문맹 퇴치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청소년들에게 계급의식 고취와 식민지배의 모순을 강조하는 등 항일의식을 일깨웠다. 자신이 창작한 「농민야학가(農民夜學歌)」·「농촌(農村)의 추기(秋期)」 등 당시 현실을 풍자한 노래를 가르쳤다. 한편 학예회·소인극(素人劇) 등을 개최하면서 식민 지배의 허구성을 폭로하였다. 정상갑(鄭尙甲)·최병호(崔炳鎬)·김만갑(金萬甲)·정중교(鄭重敎)·정덕영(鄭德榮) 등과 비밀결사체인 ‘가나다소년회’를 조직하였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자 「능라도(綾羅島)」라는 소인극을 공연하는 활동도 병행하였다. 이는 공산주의 이념을 전파하여 상호간 긴밀한 유대와 대동단결을 도모하려는 목적이었다. 허장환·최병호·정상갑·정운교(鄭雲敎)·조두일(趙斗一)·조두칠(趙斗七) 등과 함께 조직한 감포적색농민조합(甘浦赤色農民組合)은 이러한 목적을 수행하려는 중심적인 비밀결사체였다. 경주군 관내 다른 지역으로 파급되는 등 열기가 고조되었고, 연대를 통한 중장기적인 운동방향론도 모색되었다. 이를 감지한 경주경찰서 고등계는 불법적으로 사무실과 가택을 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동료들과 함께 1935년 8월 일본 경찰에 붙잡혀 투옥되었다. 온갖 고문과 회유가 시작되었으나 전혀 굴복하지 않고 동료들을 보호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 결과 그해 8월 20일 적색농민조합 중심 인물로 혼자만 재판에 회부되었고 함께 조사받은 허장환·최병호·김만갑·정상갑·정운교·정덕영·조두일·조두칠·최용하 등 9명은 불기소처분으로 풀려났다. 1936년 3월 2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형을 받고 3월 27일에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동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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