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내범
金迺範1897. 3. 23 ~ 1949. 11. 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보합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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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3월 23일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서림면(西林面) 광봉동(光峯洞)에서 태어났다. 같은 보합단원인 김내홍(金迺洪)의 동생이며 김내찬(金迺贊)·김승옥(金昇玉)도 같은 집안이다. 13살 무렵까지 한학을 공부하였다. 1920년 8월 보합단(普合團) 총무 김동식(金東植)과 안효준(安孝俊)·백운기(白雲起) 등으로부터 동단의 목적과 취지를 듣고 단원으로 가입하였다. 9월에는 이광세(李光世)·조창화(趙彰和)·신태정(申泰楨)·김인상(金仁尙), 박씨 3형제 등 8명을 보합단에 가입시켰다. 또 박초식(朴初植)에게 소집장에 임명하는 「사령서」를 교부하였고, 박중식(朴仲植)·박완식(朴完植)·이윤성(李允成)·조원세(趙元世) 등에게 입단증을 교부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9월 말경에는 보합단의 본거지가 동암산(東岩山)에서 선천군(宣川郡) 내산(內山)으로 이동하였다. 광봉동을 지날 당시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은 단원 24~25명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등 이들을 지원하였다. 군자금 모집을 위해 동생 김내두(金迺斗)에게 폭탄 제조를 위한 한지와 마포를 사오게 하여 음력 9월경 단원들과 함께 용천군(龍川郡) 박초식의 집에서 폭탄 11개를 제조하였다. 제조한 폭탄의 일부는 김동식에게 전달하였고, 나머지는 박초식·이광세 등의 집에 숨겼다. 보합단의 본거지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철산경찰서에 활동 사실과 본거지가 노출되면서 백운기·박세정(朴世正)이 붙잡혔다. 단원 한우종(韓禹種)·이동원(李東元)·김응초(金應焦)는 교전 끝에 사망했으며, 단장 김중량도 부상을 입고 중국으로 피신하였다. 총무 김동식과 김덕하(金德河)·김태하(金泰河)·김하원(金河元)·안교준(安敎俊) 등은 피신하여 박초식과 그의 집에 머물며 군자금과 단원을 모집하였다. 이후 11월 중국 콴뎬현(寬甸縣) 모전자(毛甸子)로 본부를 이전하였다. 일부 단원들과 함께 국내에 남아 김동식이 보낸 보합단의 중요 장부와 문서를 자택에 숨겨 보관했다. 보합단의 지방 총무장을 맡았고, 형 김내홍은 재무부장을 맡아 단원들이 모집한 군자금과 입단서·정칙(定則)·영수증·선전문 등의 문서를 맡아 관리하였다. 군자금은 대부분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자금으로 송금되거나 무기 구입을 위해 사용되었다. 1920년 말 국내에 남아있던 대원들은 김도원 등과 서울의 무장계획단과 연합하여 한성은행 등을 습격해 군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에 있는 김동식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아 서울로 보냈으며, 김내홍은 거사 자금으로 100원을 전달하였다. 그러던 중 12월 4일 ‘서울 운니동사건(일명 관철동사건)’으로 김도원 등이 체포되면서 무장계획단과의 은행 습격작전은 성사되지 못하였다. 이어진 경기도 제3부와 종로경찰서, 평북 제3부 합동의 보합단원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작전으로 집안에 은닉했던 장부와 무기 등을 압수당했으며, 국내에 남아 활동하던 단원 2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1922년 2월 25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폭발물취체벌칙 위반·강도 등의 죄목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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