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칠
金其七1907. 1. 2 ~ 1965. 5.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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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9) 1907년 1월 2일 전라남도 순천군(順天郡) 송광면(松光面) 장안리(壯安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금촌기칠(金村其七)이라는 창씨명을 사용하였다. 어린 시절 한문을 2년간 수학하였고, 19세에 송광사(松光寺)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연대 미상의 시기에 전남 화순군(和順郡) 도암면(道岩面) 대초리(大草里)에 있는 운주사(雲柱寺)의 주지가 되었다. 1944년 6월 상순경 절의 기부금을 모금하려고 화순군 도암면 용강리(龍江里)에 사는 정순호(鄭淳浩)의 집을 방문하였다. 여기에서 그로부터 ‘사이판에 있는 일본군 비행장이 위험하여 한국 흥남(興南)으로 이전하기 위해 공원 3,500명과 기계 등을 군함에 싣고 출발하였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도중에 미군 잠수함에 의해 격침된 것 같다’, ‘도쿄(東京)는 공습을 받아 위험하기 때문에 쇼와(昭和)의 피난처를 만들기 위해 흥남에 공사를 하고 있다’라는 등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의 불리한 전쟁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1944년 4월 14일 전남 나주군(羅州郡) 다도면(茶道面) 방산리(芳山里)에 사는 이치홍(李治洪)으로부터 ‘영국과 미국이 싱가포르를 탈환하였는데, 이때 일본군이 다수 전사하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지원병제도와 징병제도를 실시하여 병력을 보충하려고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한 1944년 9월 1일 도암면 용강리에 사는 박춘근(朴春根)으로부터 독일이 패전하면 영국·미국과 손잡고 일본을 공격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1944년 10월 9일 자택에서 정순호 등으로부터 전해 들은 전쟁 상황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면서 때가 되면 우리 민족이 죽창을 들고 관청을 습격하는 등 봉기를 일으켜야 한국의 독립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이로 인해 일제에 붙잡혀 1945년 3월 8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불경죄, 육해군형법위반, 보안법위반, 조선임시보안령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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