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진
康奎鎭1905. 10. 28 ~ 1942. 3. 2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함남기자연맹
- · 조선일보 원산지국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함남기자대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5년 10월 28일 함경남도 덕원군(德源郡) 적전면(赤田面) 당상리(堂上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강해파(康海波)·강중진(康中鎭) 등이 있다. 원산부(元山府) 상동(上洞) 사립 보광학교(保光學校)에 재학하던 1924년 2월 29일 강기덕(康基德)이 운영하는 원산부 명석동(銘石洞) 덕흥인쇄소(德興印刷所)에서 ‘3월 1일을 독립만세기념일로 기념하라. 이천만 우리 동포여’, ‘아느냐 조선독립운동기념일 3월 1일. 오늘을 기념하자’, ‘아느냐. 3월 1일 대운동기념일을, 이천만 대중이여’ 등의 문구가 적힌 문서 10여 통을 다른 이들과 함께 제작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일, 제작한 문서 5매를 휴대하고 원산역전 등 교통이 번잡한 곳의 대중이 볼 수 있는 벽과 전신주에 게재하였다. 같은 날 오후 9시 학교로 가서 3월 1일은 조선독립기념일이라고 알리고 교실 칠판에도 ‘오늘은 조선독립기념일’ 이라고 크게 써서 학생들에게 독립운동 사상을 선전하였다. 특히 원산 지역 보광학교 학생들과 배성학교(培誠學校) 학생들이 함께한 3·1운동 기념 투쟁은 언론을 통해 국내에 알려져 3·1운동을 상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 보광학교 학생 유관일(柳寬一)·맹승수(孟承洙)·김창순(金昌淳)·강명운(康鳴運), 배성학교 학생 송상옥(宋尙玉)·이규운(李奎運)·박제범(朴濟範), 덕흥인쇄소 직공인 윤식(尹植)과 함께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을 이유로 1924년 5월 7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형을 선고 받았다. 출소 후 계몽운동에 전념하면서 『조선일보』 원산지국을 경영하였다. 1927년 12월 26일 경찰이 함남기자연맹이 주최하는 함남기자대회 개최를 금지하자 이에 대항하여 「경찰탄핵연설회」를 진행하고 시위 행진을 하였다.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갇힌 후에도 같이 체포된 사람들과 함께 무리를 이루어 순사의 지시에 따르지 않고 저항하였다. 재판 과정에서도 재판정에 출석하지 않는 등 저항을 계속하였다. 결국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및 공무집행 방해의 혐의로 1928년 12월 12일 금고 8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에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지만, 1929년 2월 20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상고를 기각하여 결국 복역하였다. 석방 후 『조선일보』 원산지국장으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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