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김남극

金南極

1868 ~ 1920. 10. 17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남극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함북 명천(明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명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68년경에 함경북도 명천군(明川郡)에서 출생하였다. 북간도(北間島)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만주 지린성(吉林省)의 옌지현(延吉縣), 허룽현(和龍縣), 왕칭현(汪淸縣), 훈춘현(琿春縣) 지역은 대한제국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정착한 곳이며,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이 지역에 다수의 한국인 학교가 세워져,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민족교육운동이 활발히 진행되었다. 일찍이 만주 지린성 훈춘현 대황구(大荒溝)로 이주하였고, 1909년 함경도 출신 백초(白樵) 유완무(柳完茂), 양하구(梁河龜)가 힘을 합해 대황구에 기독교계 민족학교 동창학교(東昌學校)를 설립했을 때 그곳의 교장으로 취임하였으며, 대황구 지역의 유지로 이름을 떨쳤다. 동창학교에서는 교사 2명의 지도 아래 생도 28명이 수학하였으며, 유년 필독 및 군대식 체조를 가르쳤다. 1916년 말 함남 단천(端川) 출신인 성재(誠齋) 이동휘(李東輝)가 대황구의 조선인 유지와 더불어 지린성 왕칭현 나자구(羅子溝) 소재 동림무관학교(東林武官學校)와 대황구의 동창학교를 합병하여 북일학교(北一學校)를 설립하고자 할 때 이에 참가하였으며, 이듬해인 1917년 1월 동림무관학교 학생 20명과 동창학교 학생 20명이 모여 북일학교가 설립될 때 부교장에 취임하였다. 학생들과 더불어 주도적으로 대황구촌에서 서쪽으로 1킬로미터 떨어진 산기슭에 8칸 규모의 목재 건물을 신축하여 북일학교를 위한 교실 3개를 마련하였으며, 이후 학교 행정사무를 담당하였다. 또한 군사과, 정치과, 성경과 등 3개 반으로 나누어 교육을 실시하였다. 1919년 3·1운동 발발 직후인 4월 교장 양하구가 일제에 체포된 이후에는 실질적으로 교장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한편, 1920년 6월 만주 봉오동(鳳梧洞) 전투에서 독립군이 일본군을 격파하자, 일제는 1920년 10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일본군은 독립군뿐만 아니라 민간인을 비롯한 북간도 지역의 한국인을 학살하였는데, 이를 경신참변(庚申慘變)이라 한다. 이때에 이르러 일제는 북일학교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고, 이곳을 약탈해 군장비 및 태극기, 군대교육령 등을 압수하였다. 당시 일본군에 체포되었을 때 “이 학교는 내가 꾸렸고, 이 학교의 모든 일은 나에게 책임이 있”으며 “다른 사람들은 문제가 없으니 당장 석방하라”라고 요구하였다. 이 과정에서 1920년 10월 17일 대황구의 동장을 지내던 양병칠(梁柄七)과 더불어 일제에 의해 피격,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