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익
具滋益1898 ~ 1945. 10. 14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국민회
- · 대한북로독군부
- · 대한국민군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1898년경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미포면(美浦面)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양친을 여의고 숙부인 구춘선(具春先)이 있던 만주 왕칭현(汪淸縣)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13일 지린성(吉林省) 옌볜(延邊) 룽징(龍井)에서 한국독립축하회가 열렸다. 이어 3월 26일 정오 왕칭현 백초구(百草溝)에서도 한인 1,200여 명이 참여한 독립축하회가 열렸고, 이날 대왕청(大汪淸)의 김석구(金錫九), 유수하(柳樹河)의 계화(桂和)에 이어 독립 축하 연설을 하였다. 한편, 룽징(龍井)의 독립축하회가 열린 뒤 북간도의 각 지방 대표가 모여 북간도 한인 사회의 자치와 독립운동을 조직화할 기관으로 조선독립기성회를 결성하였다. 그 후 4월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조선독립기성회는 임시정부 산하의 대한국민회로 개편하고 그 아래 동·서·남·북·중의 5개 지방회와 70여 개의 지회를 두었다. 대한국민회가 결성되면서 북부지방총회의 재무부장에 임명되었다. 한편, 대한국민회도 다른 독립군 단체처럼 자체 독립군부대인 대한국민군을 편성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벌였다. 1920년 5월 일제와 싸울 때 주로 연합한 대한국민군과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최진동(崔振東)의 대한군무도독부가 통합하여 단일 연합 부대인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가 결성되면서 군무과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그해 10월 일본군대가 훈춘(琿春)사건을 구실로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 작전을 벌이면서 대한북로독군부는 해체되었다. 이에 따라 대한국민군도 독자적 활동을 하게 되면서 향관(餉官)이 되어 대한국민군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1945년 10월 14일 별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동일인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1927년 일제가 조선공산당 만주총국 동만도(東滿道) 간부 책임위원 안기성(安基成)의 집에서 압수한 문서에서 왕칭에 사는 ‘구자익(具自益, 30세)’이 확인된다. 구자익이 등장하는 문서는 만주총국이 무장투쟁 준비를 위해 조사한 ‘군대생활자조사표’라는 것으로 1927년 5월 16일 안기성이 각 세포에게 명하여 작성한 것이다. 이 문서에 의하면 구자익은 “3·1운동 당시 군정서(軍政署)에서 활동하였고, 그 후 중일관(中日官)에 귀순하였으나 심복(心服)하지 않고 지금은 사립학교 교원”이라고 한다. 활동 단체가 군정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으나, 성명·연령·주소 등이 유사한 것으로 보아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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