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창순
具昌順1888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독군부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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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2) 출생 시기는 명확지 않으나, 일본 경찰에 체포된 1921년 당시 34세인 점으로 보아 1888년생인 것으로 추정된다.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온성면(穩城面) 동화동(東和洞)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7월경 온성군 온성면에서 북간도의 대한국민군과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그리고 최진동의 대한군무도독부의 단일 연합 부대인 대한북로독군부(독군부) 부원인 이창수(李昌秀)에게서 독군부장 최진동 명의의 독군부 역원선임장을 받아 독군부에 가입하고 독군부온성지방국 경찰과원에 선임되었다. 재무과장 이서오(李瑞五)에게 전달된 선임장에는 온성지방국장에 유병준(兪秉濬), 경찰과장에 변남조(邊南朝), 경찰과원에 한석규(韓鉐奎), 징모과장에 조정훈(趙鼎訓), 징모과원에 오기준(吳琪準)·오현준(吳現準)·안태현(安泰現), 통신과장에 김석종(金錫宗), 통신원에 박문일(朴文一)·지창록(池昌祿)·이병송(李炳松), 인사과원에 안봉현(安鳳鉉)·조남극(趙南極), 서기에 전도영(全道榮)이 선임되어 있었다. 선임장을 받은 이들은 온성면 주원동(周原洞) 강민준(姜敏俊) 집 부근의 버드나무 아래 모여 각자 비밀을 엄수하고 선임장 수령증을 작성하여 독군부로 보내기로 결의하였다. 이어 독군부로부터 온성지방국장 유병준에게 군용 짚신을 모집하여 보내라는 명령을 전달받고 이서오·오기준 등과 함께 짚신 1족을 50전으로 계산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협의하고, 동화동 안영권(安永權)에게 군자금 제공을 권고하여 20원을 모집하여 우동규에게 전달하였다. 9월까지 부원들이 온성면에서 모집한 군자금 120원으로 비밀리에 온평상회(溫平商會) 지점원 최문규(崔汶奎)를 통해 짚신 300족을 사서 독군부에 보냈다. 1920년 (음)8월에는 오기준·오현준·전도영·안태영·이서오 등과 함께 동화동 구영한(具永漢)의 집에 모여 독군부에서 보내온 독군부장 최진동 명의의 선유문을 인쇄하여 각처에 배포하기로 협의하였다. 선유문의 내용은 ‘한국을 독립시키기 위하여 독립군 측에서 독립군을 모집하여 교육하고 있고 그 세력이 마치 높은 산에서 바위들이 떨어져 오는 바윗돌과 같으니 모든 동포는 일치 협력하여 일본을 배척하고 독립을 기도하자’라는 것이었다. 면사무소 뒤에 있는 오범길(吳範吉)의 집에서 면사무소에서 빌려온 등사판을 이용하여 선유문 수십장을 등사하여 배포하다가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21년 9월 28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10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1921년 12월 23일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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