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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문

具成文

1889 ~ 1920. 1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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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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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출생지역과 출생연도는 알 수 없으나 피살 순국 당시인 1920년에 31세인 점으로 미루어 1889년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3·1운동 직후인 1919년 4월경 백두산록 서남 지역 압록강변에 있는 창바이현(長白縣)에 거주하면서 이동백(李東白)·양춘향(梁春鄕) 등과 연락하며 동지의 규합을 계획하는 활동으로 일본 관헌에게 독립운동 주모자로 지목되었다. 그해 5월경 거주지인 창바이현에서 결성된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군비단)에 가입하여 군단원으로 활동하였다. 군비단은 원래 함경도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단속을 피해 함경도와 마주한 남만주의 창바이현에서 조직한 항일 무장 단체다. 이런 사정 때문에 군비단은 창단과 동시에 조직과 간부 등을 구성하지 못하였다. 1919년 10월경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이한평(李漢平, 일명 이태걸(李泰杰))·양현경(梁玄卿) 등 7명이 파견되면서 군비단의 약장과 지단 규칙을 마련하는 등 조직을 정비하여 체계적인 독립군단으로 발전하였다. 이에 따라 초기 주요 간부는 단장 이한평, 부단장 김동준(金東俊), 총무장 김찬(金燦), 재무장 이동백, 경무부장 이광랍(李光拉), 참모장 서병호(徐丙鎬) 등이었고 이후 활동이 본격화하였다. 군비단은 중앙 본부의 정비와 함께 장차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지원 아래 만주와 노령 지역에서 독립군을 조직, 총동원하여 독립 전쟁을 실현한다는 목표로 창바이현은 물론 만주와 국내 여러 지역에 지단을 설치하였다. 본부가 있는 창바이현에는 제8도구(道溝) 남강성리(南江城里)에 제1구 지단, 제13도구 동흥리(東興里)에 제1구 지단 지부 등 여러 지역에 지단과 지부를 설치하고 지단에는 지단장 및 지부장 아래 총무·재무·서기·통신원 등을 임명하여 조직을 이끌어 나갔다. 국내에도 단원을 파견하여 함경도의 북청·단청 등지에서부터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지단을 조직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군비단의 출발지이기도 한 함경도에서 지단 조직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창바이현에서 군비단이 조직되어 독립운동이 활발해지자 일본 관헌은 중국 마적으로 분장한 암살대를 조직하여 독립군 공격에 나섰다. 1920년 11월 29일 밤 창바이현 팔도구 학교 학생이자 군비단 경호원인 조승무(趙承武) 등 7명과 함께 앞으로 진행할 독립운동 방침을 토의하던 중 일본 관헌인 암살대 18명의 기습 공격을 받는 과정에서 피살되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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