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구기언

具奇彦

1884. 5. 3 ~ 1958. 10. 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구기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고성(固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자금모집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884년 5월 3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 회화면(會華面) 배둔리(背屯里)에서 태어났다. 1924년 7월 말경 김찬규(金燦奎)로부터 군자금 모집 지령서를 받고 군정서 총무국장에 임명되었다. 김찬규는 1924년 (음)3월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파견원 김보현(金普鉉)을 만나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협의하였다. 김보현에게서 임시정부 군무총장 노백린(盧伯麟) 명의의 군자금 모집 사령서를 얻어 그해 6월경 경남 밀양(密陽)으로 내려가 신석원(申錫遠)을 동지로 끌어들였다. 7월 20일경 신석원의 집에서 다수의 사령서를 작성하고, 이를 분배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고 아울러 다수의 동지를 규합하기로 하였다. 이때 김찬규로부터 군자금 모집 지령서인 사령서 40매를 받고 군정서 총무국장에 임명되었다. 선철관(宣澈觀) 등과 함께 모집한 군자금을 김찬규에게 건네주고 그를 군정서 밀사로 임시정부에 파견하기로 결의하는 한편, 사령서를 가지고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던 중 1925년 2월 대구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26년 3월 23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죄로 열린 공판에서 김찬규 등의 군자금 모집 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하였다는 항소 사실과 관련하여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검사가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여 1926년 5월 1일 열린 대구복심법원에서 증거를 인멸한 것이 인정되어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