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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룡

高基龍

1878. 9. 5 ~ 1947.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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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고기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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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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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8)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8) 1878년 9월 5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온양면(溫陽面,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운화리(雲化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8일 온양면 남창리에서 일어난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남창리의 만세 운동은 서울의 3·1운동 소식이 전해지며 시작되었다. 서울의 3·1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한 웅촌면의 이재락(李在洛)을 통해 독립선언서를 보게 된 이수일(李樹一)은 온양 이씨 문중에 3·1운동 소식을 알렸다. 원로 8명은 문중 청년들에게 독립운동에 나서기를 권하는 통고문을 만들었다. 이에 청년 이수락(李壽洛)·이용락(李龍洛) 등은 남창 장날인 4월 8일에 맞춰 만세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전날 밤 이용락의 집에 모여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날 오후 4시경 주도자들이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시장 한복판에서 나눠주며 만세를 부르자, 많은 주민이 이에 호응하였다. 이날의 시위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시위 현장에서 이용락에게 만세 운동에 사용할 깃발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이용락은 윤두찬(尹斗讚)이 운영하는 시장 내 포목점에서 ‘대한 독립 만세’라는 글씨를 크게 쓴 흰 기를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들고 나왔다. 이 깃발을 받아 들고 시위대의 선두에서 ‘대한 독립’을 외치며 군중을 이끌었다. 이수필(李樹苾)·안병철(安秉哲)·김우상(金禹祥)·우동진(禹東瑨) 등 50여 명의 주민이 이에 호응하여 함께 만세를 불렀다.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에 공포를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는데, 이때 기수를 맡아 시위대를 이끌다 일제 경찰에 구타당하며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6월 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다가 1920년 4월 26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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