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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형

姜宙馨

1887. 10. 19 ~ 197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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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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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강진(康津)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강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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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강진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87년 10월 19일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 강진면(康津面) 남포리(南浦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강부형(姜富馨)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3·1운동의 소식이 종교계와 학생들을 통해 빠르게 전해지면서 강진면에서도 만세 시위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1919년 3월 말 기독교인 이기성(李基性)·황호경(黃鎬京) 등은 도쿄 유학생 김안식(金安植)과 함께 만세 시위를 주도할 사람을 물색하던 중 경찰에 발각되었다. 이때 검거를 면한 이기성은 김현봉(金炫鳳)·김후식(金厚植)·오승남(吳承南) 등과 함께 다시 4월 4일 장날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만세 시위 전날인 4월 3일 남포리교회를 찾아온 이기성을 만난 뒤, 만세 시위에 참여할 의사를 밝혔다. 다음 날인 4월 4일 강진교회의 타종을 신호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다. 주동자들은 강진 장터에서 태극기 300매, 독립선언서 70매, 독립가(獨立歌)를 인쇄한 용지 20매를 군중에게 나누어 주며 만세 시위를 이끌었다. 1,000여 명에 달하는 군중의 만세 참여를 독려하다가 그 자리에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4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1919년 5월 2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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