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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필

姜文必

1872. 12. 15 ~ 1953.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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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문필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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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울산(蔚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울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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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병영청년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9) 1872년 12월 15일 경상남도 울산군(蔚山郡) 언양면(彦陽面, 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남부리(南部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초 하상면(下廂面) 병영리(兵營里, 현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1·2동 일대)의 병영청년회 간부 이현우(李鉉禹)·이종욱(李鍾旭)·이문조(李文祚)·박영하(朴永夏)·이종근(李鐘根)·양석룡(楊錫龍)·김장수(金長壽) 등이 논의하여 4월 4일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이들은 전날인 4월 3일 독립선언서를 인쇄하고 태극기, ‘구대한국독립만세(舊大韓國獨立萬歲)’,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제작하는 등 만세 운동을 준비하였다. 4월 4일 오전 9시경 일신학교(日新學校, 현 병영초등학교)에 집결한 청년회 회원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였다. 이때 울산경찰서에서 출동한 일제 경찰과 군인이 주도자 10여 명을 검거하고 무력으로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들은 김세진(金世鎭)의 집으로 피신하였다가 다음 날 다시 만세 시위를 벌이기로 계획하였다. 4월 5일 오후 3시경 일신학교 부근에 다시 모인 수천 명의 시위대와 함께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들고 독립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행진하였다. 시위대와 전날 만세 시위로 연행된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일제 군경과 충돌하는 등 격렬한 만세 시위를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10일 부산지방법원 울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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