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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섭

姜南燮

186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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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남섭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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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홍원(洪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홍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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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68년경 함경남도 홍원군(洪原郡) 학천면(鶴泉面) 풍산리(豊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홍원군 천도교 교구장으로서, 손병희가 주도한 만세 운동 취지에 찬동하여 3월 3일 홍원군 천도교구당에서 강인택(姜仁澤) 등에게 만세 운동을 권유하였다. 이어 3월 7일과 8일에는 김세경(金世暻)·김한욱(金漢郁) 등에게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동지들과 협의한 끝에 16일부터 3일간 읍내 장날에 대규모 만세 운동을 벌이기로 결의하고 천도교 신도들에게도 동참을 권유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3일 강연상(姜鍊翔)의 집에서 김세경·강인택·김한욱 등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고 독립선언서 1,000매를 등사하는 등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16일 아침부터 동리 사람들을 권유하여 읍내 장터로 나갔다. 오전 11시경 장터에 700여 명의 천도교인과 주민이 모이자,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외치며 군청 등 읍내의 곳곳을 돌면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에 홍원경찰서 일제 경찰은 미리 준비한 붉은색 잉크를 뿌려 선두의 주도자들을 표시하고 시위대를 강제해산하려 하였다. 그러나 시위대가 불응하며 계속 만세 시위를 진행하자 일제 경찰은 발포를 감행하여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4월 2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선고받고 불복하여 항소하였다. 6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2년 형을 선고하자 다시 상고하였으나 7월 2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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