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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수

姜奎秀

1881. 7. 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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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규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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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장단(長湍)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장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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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1) 1881년 7월 2일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진남면(津南面) 동장리(東場里)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6일 장단군 진남면 동장리에서 이창영(李昶永)·한기동(韓基東)·정순만(鄭順萬)·백태산(白泰山)·조진행(趙秦行)·이성구(李聲九)·양세영(梁世瑛)·정종락(鄭鍾樂) 등과 함께 진남면 만세 운동을 주동하였다. 이날 밤 동장리에 있는 사립 성화학교(聖化學校) 뒤편에 모인 주민 10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부근 일대를 시위 행진하였다. 이후 선두에 서서 주민들을 이끌고 진남면사무소로 향하였다. 면사무소 앞에 도착하자 “면장을 죽이자. 면사무소를 부숴라”라고 외치며 건물과 유리문에 투석하였다. 이때 면장이 도망친 후였으나, 시위에 참여한 주민들은 분위기가 더 고조되었다. 군중의 선두에서 면사무소를 향해 돌과 흙덩이를 던지고 몽둥이로 쳐서 입구의 문등(門燈) 유리 4장과 좌측 유리문 17장을 파손하였다.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6월 20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 혐의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7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9월 27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고 1920년 6월 26일 출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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