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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정숭

郭貞崧

187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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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곽정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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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옹진(甕津)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옹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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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흥미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71년경 황해도 옹진군(甕津郡) 부민면(富民面) 강령리(康翎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 당시 49세로 옹진군 마산면(馬山面) 온천리(溫泉里) 마산교회 목사로 시무하고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옹진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한 사람은 해주 출신 기독교인으로 서울에서 협성보통학교 교사를 하고 있던 김명신(金明信)이었다. 그는 1919년 2월 28일 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 박희도(朴熙道)에게서 독립선언서 450매를 수령한 후 해주에 와서, 그날 오후 황학소(黃鶴巢)에게 독립선언서 300매를 전달하였다. 다음 날인 3월 1일 김명신은 옹진군 옹진면 온천리에 도착하여 마산교회 전도사인 이경호(李京鎬)에게 독립선언서 150매를 건네주었다. 이경호는 그날 오후 교인 7명을 동원해 독립선언서를 면내 곳곳에 부착하고 군내 주요 교회에 분배하였다. 그날 흥미면 식여리 율목동(栗木洞) 교회 전도사 최일영(崔日永)도 독립선언서 15매를 교부받아 교회로 돌아왔다. 당시 마산교회가 아닌 율목동교회에 머물고 있던 터라, 그곳 교인들과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2일 최일영과 함께 율목동 교회에서 독립선언서의 취지를 설명 낭독하였으며, 교회 안에서 교인 60여 명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쳤다. 다음날인 3월 3일, 최일영이 교인들과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다가 검거될 때 함께 체포되어 헌병분대에 구금되었다. 1919년 4월 5일 해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6월 4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7월 10일 기각으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상고취지서에 ‘민족으로서 자국을 독립시키려고 함은 인류의 바뀌지 않는 상정이고, 현재 세계가 민족자결이 대세이다’라고 자신의 신념을 밝히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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