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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서

高洛西

1856. 8. 7 ~ 1923.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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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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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洪城)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홍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금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56년 8월 7일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금마면(金馬面) 부평리(富平里)에서 태어났다. 민영갑(閔永甲)은 송강리 최중삼(崔仲三, 최팔용(崔八龍))의 집에서 훈장으로서 최중삼의 자제와 마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구항면 황곡리의 이길성(李吉性)과 교류하고 지냈다. 당시 서울에 왕래하던 이재만(李載萬)과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던 3·1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끝에, 가설 연극 공연장으로 마련된 가산리 이원교(李元交)의 집으로 모이는 다수의 지역 주민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합의하였다. 이어 최중삼·김재홍(金在洪)·조재학(趙載鶴)·조한원(趙漢元) 등에게 만세 계획을 알려 찬성을 얻었다. 이들은 4월 1일 저녁에 함께 공연장으로 갔다. 오후 8시경 연극 공연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조한원이 먼저 독립 만세를 선창하고, 주도 인사들도 따라서 만세를 불렀다. 이에 관객들도 호응하여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어 경찰이 출동해 군중을 해산시키고 일부 주도 인사를 체포하여 끌고 갔다. 체포되지 않은 사람들은 다음 날 4월 2일 20리 떨어진 홍성 읍내 시장에 나가 독립 만세를 외쳤다. 4월 4일 밤에는 홍성군 내 4개면의 20여 개소에서 면내 주민들은 마을 산 위에 올라 불을 피우고 독립 만세를 외치는 횃불 독립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에 금마면에서는 면내 주민 약 500명이 마을 주위의 산에 올라가서 불을 놓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4월 1일에 일어난 독립 만세 운동의 주도 인사인 민영갑·조한원과 같은 동네에 거주하고 있었던 바, 4월 1일의 독립 만세 운동과 4월 4일의 횃불 독립 만세 운동에 부평리 주민들과 함께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3일 홍성경찰서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태 90도의 처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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