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석
金今石1892. 7. 29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광주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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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892년 7월 29일경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외남면(外南面) 사평리(沙坪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전남 광주군(光州郡) 효천면(孝泉面) 양림리(楊林里, 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의 제중원에서 간호인로 근무하였다. 3월 10일 광주 시위를 준비한 김철(金鐵, 일명 김복현)·최정두(崔正斗) 등은 숭일학교 교사 남궁혁(南宮赫)의 집에서 동료들과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거사 일을 장날인 3월 10일로 정하였다. 3월 10일 오후 2시경 김철·김강(金剛) 등이 선언서를 배포하고,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은 선언문과 태극기를 시위 군중에게 나눠주었다. 부동교(不動橋) 아래 작은 장터에서 1,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시위대는 기독교인, 학생, 시민을 중심으로 커졌으며 오후 5시경까지도 이어졌다. 시위대는 작은 시장, 광주우편국 앞, 본정통(本町通), 북문통(北門通)을 거쳐 다시 광주우편국 부근으로 되돌아왔다. 이때 기마헌병대와 소방대·재향군인회 소속 회원들이 진압에 나섰고, 시위 군중 100여 명이 붙잡히며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이 만세 시위에 광주 제중원의 동료 간호부 김안순(金安淳)·김화순(金華順)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4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8월 13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광주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1919년 12월 4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임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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